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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너와 가는 세상에 (총2권/완결)
벨수국 지음 / 시크노블 / 2018년 2월
평점 :
병약한 몸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의 지재일(주인공)은 남자아이들만 득시글거리는 남고에서 눈엣가시 같은 취급을 당한다. 조회 시간 마다 픽픽 쓰러지는 바람에 풍선인형, 볼링 핀 같은 다분히 비하적인 멸칭으로 불릴 정도다. 그런 재일을 전교생 가운데 유일하게 본명으로 부르는 건 같은 반의 윤솔(주인수) 뿐이다. 성적은 뛰어나지만 그리 튀지 않는 학생인 솔은 병약한 몸이면서도 꿋꿋이 조회 시간에 서 있고, 체육 수업도 빠지지 않는 재일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 수업 중에 재일이 쓰러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달려간다. 두 소년의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솔은 쓰러진 재일을 등에 업고 양호실 앞에 도착했을 때, 볼과 목젖에 차례로 와닿는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고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경험을 한다. 물론 손의 주인은 재일이었다. 언제 쓰러졌냐는 듯이 눈을 뜬 재일은 솔의 이름을 부르며 내려 달라고 말한다. 재일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다. 그 사이 재일은 찬바람을 날리며 솔을 내버려 두고 사라진다. 이후 솔은 자신의 몸에 닿았던 체온을 잊지 못하고 교실에서 이전보다 더 유심히 재일을 바라본다. 그리고 학교 밖에서 우연히 재일을 발견하고, 마침내 마주친 순간 솔은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관심이 호감으로, 그리고 호감이 열을 띤 애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냈다. 때문에 보통 BL 소설의 클리셰를 뒤집은 설정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솔은 수에게 반한 공이 가질 법한 시선으로 재일을 바라보며 예민하다 못해 까칠한 성정을 받아주려고 노력한다. 병약공이라는 설정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공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수 또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서 직진하는 솔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조금도 살갑지 않았던 재일이 서서히 솔을 받아들이는 변화 또한 눈여겨 볼만한 포인트다.
BL 소설은 장르상의 특성 때문인지 육체적 관계가 선행되는 작품이 많은데, 이 소설은 먼저 감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줘서 풋풋하게 느껴졌다. 물론 마냥 밝고 싱그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담아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럼에도 재일과 솔이 서로를 향한 마음 만큼은 맹목적일 정도로 순수한 형태다. 때문에 오컬트나 귀접과 같은 다소 마이너한, 어쩌면 사람에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설정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작가님의 전작인 <마중 나오던 우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읽은 소설인데, 역시나 필력이 좋아서 술술 읽혔다. 마이너한 소재와 설정 때문만은 아니고, 작가님이 쓰고 싶은 소설을 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유행하는 특정한 설정 등에 편승하지 않은 작품을 만나는 건 장르 소설을 읽는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