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의 줌아웃 -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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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아니고서는 왠만해서 책 한권을 하루에 독파하지는 않는데 간만에 하루만에 독파했다. 촛불체제의 형성과 한국사회의 전후맥락을 설명한 '줌아웃'이라는 책이다. 피사체를 최대한 근접촬영하여 디테일이 살아있는 기사가 아닌 최대한 뒤로 빠져 사안의 구조와 맥락을 짚어주는 줌아웃 식 기사의 달인, 시사인 천관율 기자가 10여년의 기사를 선별하여 책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알기로는 세계 역사상 전무한, 피흘림없이 최고권력자를 갈아치운 2017년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10여년 간의 한국사회 주요 사건들을 재구성했다.

1부는 대통령 탄핵 과정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할만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들과 천관율 기자의 현장의 촉이 담긴 기사들로 촛불의 시작부터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 촛불의 시작과 마무리까지 담아내고 있다. 2부는 시간을 좀 늘려 NLL 대화록 논란, 메르스, 세월호, 국정화 교과서 논란 등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기간동안 누적되어온 주요한 사건들을 일별한다. 렌즈를 멀찍이 놓고 보았을 때 이러한 시도들은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한 시도로 평가한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의 선을 보수 스스로 넘는 시도가 누적되다 '최순실'로 임계점에 달해 주권자인 국민들이 헌정체제를 위반한 대통령에게서 권력을 다시 회수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지난 5년의 누적된 결과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줌아웃'이 보수에게도 유익한 이유는 국민들의 신임을 잃게 되었던 지점을 구체적으로 잘 짚고 있어 실패지점들을 잘 복기해 보수의 재건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보수, 보수의 재건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독서이다.

3부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안철수 현상, 민주당과 안철수가 헛발질을 하게 된 이유, 동성결혼 합헌을 끌어내기까지의 오바마가 보여주었던 전략 등 지난 10년의 주요 사건들을 조명하며 진보진영의 과제를 성찰한다. 정당의 시스템 정비와 선악구도가 아닌 욕망의 조정장치, 설득장치로서 정치를 이해하는 관점의 회복, 다수파가 되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전략들을 잘 짚어주고 있다.

4부는 촛불집회,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향후의 예상과 과제들에 대해 짚고 있다. '공정의 역습'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장이기도 하고 경쟁에 찌든 한국 대학생들의 촘촘한 계층화 경향을 다룬 오찬호 선생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도 결이 닿는 지점이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과 정유라는 국민들의 '공정'에 대한 감각을 심각하게 건드려 국민들이 장장 6개월여를 촛불집회를 지속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린 국민들의 '공정'에 대한 감각은'비례의 원칙'과 '보편의 원칙'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비례의 원칙'을 중시하는 '공정'감각이 하나,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기본권 수준이 좀 더 상향되어야 한다는 '보편의 원칙'을 중시하는 '공정감각'이 또 하나다. 저자는 촛불 이후에는 두 가지 공정감각이 갈등을 빚고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일베'가 개념도 일관성도 없다고 무시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편향된 정보라는 한계는 있지만 '비례의 원칙'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일베는 '무임승차자 제거'라는 그들의 논리를 만들었다. '호남, 여성,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회에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사회적 약자라는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무임승차자'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극단적인 '비례의 원칙'과 금기가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익명성에 기초한 인터넷 놀이문화가 결합하여 '일베'를 탄생시켰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북 단일팀 논란,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 수능 정시 강화 등은 '비례의 원칙'이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불편해 하는 지점이다. '비례의 원칙'이 때로는 최순실, 정유라처럼 무임승차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로 공정한 사회를 향한 한걸음이 되기도 한다. 반면 때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 지원이나 일자리다운 일자리 확층 등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전히 양질의 일자리, 제대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경쟁에 시달린 청년들이 이런 불편함을 가지는 것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현재는 보수가 거의 궤멸 수준이지만 저자는 촛불 이후의 보수는 제대로 된 '비례의 원칙'을 지향하는 집단이 보수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보편의 원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촛불 이후의 진보 세력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난민 문제, 교육 문제 등 촛불 이후 한국사회의 주요 문제들에 대한 여론을 보면서 이 여론이 촛불을 지지했던 그 사람들의 의견인가 의아했던 지점들이 '줌아웃'을 읽으면서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수파가 되기 위한 설득의 전략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간만에 참신하고 흥미로운 관점을 하나 득템한 만족스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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