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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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시집을 정말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근데 읽으면서 이렇게 좋은 시만을 쓸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인들은 가끔 좋지 않은 시도 쓰고, 그 사이에 좋은 시 한 편씩 쓰기도 하는데 함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렇지가 않다. 삶과 사고의 엑기스만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함시인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신문에 난 기사도 읽은 적이 없는데 오로지 이 시집을 읽고는 그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겨서 <우울씨의 일일>이라는 시집과 산문집 두 권 <미안한 마음>,<눈문을 왜 짠가>를 구입해서는 이번 여름휴가때 베낭 속에 챙겨갔다. 여행지에서 산문집을 꺼내서 읽었는데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짤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시에서 가난하고 슬픈 가족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그의 등단시가 어머니와 태아의 열 손가락에 대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시인데 함시인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깊이 모를 사랑과 슬픔을 빼고는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가난한 생활, 그 생활을 들여다 보는 함시인과 살아내야 하는 순간순간의 고통이 고스란히 시와 산문에 담겨있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돼지를 키우는 이야기, 그 사이사이에 돼지를 통해 함시인이 체험체감하는 생명있는 것들의 가슴 아리는 어떤 사랑이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할까? '생명의 빛'일까? 사람으로서 외면해서는 안될 것들을 섬세히 붙잡아 놔서 나의 둔한 가슴을 흔들어댔다.

지금 함시인은 강화도에 산다. 고욤나무 한 그루와 살구나무, 들고양이, 쥐, 텃밭 , 이웃사람들, 그리고 강화의 뻘밭에서 '말랑말랑한 힘'을 얻어서 말랑말랑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힘의 산물이 <말랑마랑한 힘>이라는 시집을 낳은 것 같다.

함시인은 어지럼증이 있고, 관절도 나쁘고 건강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돈도 없는 것 같다. 권정생선생님은 말년에는 인세를 연 1억정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함시인도 인세를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2006년 연말에 낸 산문집 <미안한 마음>은 3쇄를 찍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함시인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순한 여자가 함시인을 사랑해서 함시인과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함시인이 오래오래 살면서 계속 시를 썼으면 싶다. 그의 후원자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함시인의 시집이 새로 출간되었다는 소식, 혹은 그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앞으로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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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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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연재될 때는 읽지 않았다. 잘 알 수 없는 함경도 사투리가 유별난 작품이라는 짐작만 했다.

오히려 신문삽화에 주목했다. 그림이 하도 개성이 넘치고 아름답고 강렬해서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나는 그 그림을 볼 욕심으로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을 했다. 하지만 책에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옆사람이 신문삽화는 책에 실리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책을 받고는 갈색옷을 입은 갸날픈 소녀, 눈매가 맑고 작은 입술을 오무린 여자애를 찬찬히 보다가, 그 뒷배경이 영국인가 하다가 책을 넘겼다.

나는 거의 사로잡히듯 책을 읽어나갔다.

다 읽고나니 밖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있고, 장마철 먹구름이 낮게 내려와 오늘 밤에는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놀라운 책이다. 1990년대 북한의 다복한 한 가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황석영씨가북한인을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를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북한의 가난, 홍수, 두만강, 꽃제비 등 텔레비젼에서나 언뜻언뜻 들었던 이야기들이 살과 피를 입고는 바리라는 한 여자애의 삶에서 구비구비 펼쳐나온다. 그리고 연변, 영국으로 장소가 옮겨되면서 유색인, 테러, 파스키탄, 이라크전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영국에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현재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지금 전쟁중인 이라크인들의 슬픈 모습이 그려지고, 불법체류자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편견이 싸악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샤먼으로서의 바리의 모습을 통해 인종을 너머, 역사를 너머, 시대를 너머 인간은 슬픔을 겪으며 이 슬픔을 원한으로 품지말고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황석영씨는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면 바라는 넔살이 꽃과 생명수를 구하려 저승길을 간다. 고통을 받다가 죽은  힘 없는 인민들,  거대한 악에 저항하다가 죽은 자들, 다른 사람을 자기 욕망을 위해 괴롭히고 해꼬지 하고 죽이다가 저승에 온 자들, 그리고 종교의 지도자들의 넔들을 바리는 다 행방시킨다. 결국 생명수는 우리가 늘 밥짓는 물이고...

그야말고 싸우는 종교, 싸우는 사람들, 슬픔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바리 안에서 다 제 갈길을 가고 풀어난다. 큰 굿판을 본 느낌이다. 큰 무당가 황석영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물론 지금도 세상은 전쟁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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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 이태준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1
이태준 지음, 김윤식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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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모던'한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이 느껴지는 단편이 <장마>가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냄새, 이미지, 추억이 반드시 있을 '장마'. 1930년대 이태준이 비내리는 어느 장마철, 서울거리를 오락가락한 하루의 일과와 상념, 생활에 대한 연민 들이 이슬비처럼 부슬부슬 내린다. 그렇지만 작가는 따뜻한 눈길로 일상을 감싸안고 있다. 일제시대에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피흘리는 투쟁, 지독한 가난, 허무만이 있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작가의 선량함, 평범한 서울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삶이 맘에 든다.

 

<달밤>의 주인공 이름은 황수건이다.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속의 주인공, 황만근의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조금 모자란, 그러나 위선과 가식과 회칠이 없는 이런 인물들. 이런 인물들은 내 어린시절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그들은 세속에 재빨리 물들어, 날쌔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지 못한다. 그래서 가난하고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강둑 강바람 속에서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는 미루나처처럼 아름답게 빛나기도 한다.

한국처럼 세상살이가 각박한 사회에 황수건 같은 인물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 건강함의 척도가 되는 것같기도 하다. 미치 일급수에 사는 버들치처럼. 그래서 작가들은 이런 사람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나보다. 그래서 유독 ' 황씨'류의 삶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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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가설을 위한 망상 - 박경리 新원주통신 나남산문선 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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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를 대학생때 읽고 마흔이 되어서 다시 읽었던 감동이 되살아난다.

이번에 <가설을 위한 망상>을 읽고는 <토지>의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살아가는 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눈을 뜬채로 견디어 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으며 이런 작가가 토해내 듯 쓴 작품이 <토지>임을 다시 느꼈다. 작가가 말하는 용이, 월선이, 주갑이, 상현이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부분에는 근래에 쓴 수필들이 <Q씨에게>라는 제목으로 몇 편 실려있는데

작가가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태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감성도. 원주의 한 대학가 호수에서 밤에 호수가 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철새가 밤새도록 호수를 날개로 치는 '천둥같은 소리'에 대한 증언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들이 <나비야,청산 가자>에 그대로 인물 속의 대사로 이어진다. 작가의 삶이 소설 속에 어떻게 용해되는가을 언뜻언뜻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는 것은 힘든 것이라고 계속해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새겨서 듣고, 이러한 작가의 거듭되는 말이 내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대담자료.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문화를 죽음의 문화로 본다. 에로스, 그로테스크, 무철학을 일본의 특징으로 말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투명한 것, 영원을 추구하는 문화로 본다. 통영갓, 바람에 날리는 한복치마, 고름, 남자의 두루마기, 그리고 하늘을 향하는 버선코, 용마루 등을 영원과 투명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성이 반영된 예를 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과 일본의 '원한'을 대조하여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박경리씨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토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읽어볼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녀에게 오세영의 만화로 된 <토지>든, <청소년 토지>를 원작 <토지>든 권유할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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