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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한겨레 신문에 연재될 때는 읽지 않았다. 잘 알 수 없는 함경도 사투리가 유별난 작품이라는 짐작만 했다.
오히려 신문삽화에 주목했다. 그림이 하도 개성이 넘치고 아름답고 강렬해서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나는 그 그림을 볼 욕심으로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을 했다. 하지만 책에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옆사람이 신문삽화는 책에 실리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책을 받고는 갈색옷을 입은 갸날픈 소녀, 눈매가 맑고 작은 입술을 오무린 여자애를 찬찬히 보다가, 그 뒷배경이 영국인가 하다가 책을 넘겼다.
나는 거의 사로잡히듯 책을 읽어나갔다.
다 읽고나니 밖에는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있고, 장마철 먹구름이 낮게 내려와 오늘 밤에는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놀라운 책이다. 1990년대 북한의 다복한 한 가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황석영씨가북한인을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를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북한의 가난, 홍수, 두만강, 꽃제비 등 텔레비젼에서나 언뜻언뜻 들었던 이야기들이 살과 피를 입고는 바리라는 한 여자애의 삶에서 구비구비 펼쳐나온다. 그리고 연변, 영국으로 장소가 옮겨되면서 유색인, 테러, 파스키탄, 이라크전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영국에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현재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지금 전쟁중인 이라크인들의 슬픈 모습이 그려지고, 불법체류자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편견이 싸악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샤먼으로서의 바리의 모습을 통해 인종을 너머, 역사를 너머, 시대를 너머 인간은 슬픔을 겪으며 이 슬픔을 원한으로 품지말고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황석영씨는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면 바라는 넔살이 꽃과 생명수를 구하려 저승길을 간다. 고통을 받다가 죽은 힘 없는 인민들, 거대한 악에 저항하다가 죽은 자들, 다른 사람을 자기 욕망을 위해 괴롭히고 해꼬지 하고 죽이다가 저승에 온 자들, 그리고 종교의 지도자들의 넔들을 바리는 다 행방시킨다. 결국 생명수는 우리가 늘 밥짓는 물이고...
그야말고 싸우는 종교, 싸우는 사람들, 슬픔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바리 안에서 다 제 갈길을 가고 풀어난다. 큰 굿판을 본 느낌이다. 큰 무당가 황석영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물론 지금도 세상은 전쟁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