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드로우 - 나만의 길을 찾을 때까지 인생의 레버를 당기는 법
드로우앤드류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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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 처음 만난 초록 청년이 나에게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일하며 살 수 있다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다른 사람의 만족을 위해 살았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저 사람 부자겠지?'

'좋은 대학 나왔겠지?'

'부모가 많이 지원해줬나봐'


출발선이 다르다는 열등감 가득한 시선을 거두게 된 것은 

드로우앤드류님의 SNS마케팅 강의를 듣게 되고서 부터였다. 

그 뒤로 유튜브를 챙겨보고  크몽과 클래스101에서 첫 구매도 

앤드류님 관련 콘텐츠를 찾아 다녔다.


이 초록 청년의 매력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은 솔직한 자기다움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그 꿈에 자기다운 가치를 담아 이루어 내는 과정이 

아름다운 사람, 정말 닮고 싶은 롤모델 드로우앤드류님❤


세상이 정해놓은 인생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브랜딩하며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의 성공에 쓴소리를 하지 못 할 것이다.


나는 20년동안 디자이너로 일하고도 자기다움을 잃어버렸을까?

앤드류님 말한 이키가이를 보며 세상이 원하는 것과, 돈이되는 일만 

찾아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머리를 쎄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내 꿈은 뭐였지?"

"즐겁게 그림 그리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

"그래, 다시 즐겁게 그리자! 지금이 아니면 안돼"



무기력하게 세월의 강을 떠다니는 죽은 물고기에서 물살을 거슬러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새롭게 

도전하고 성장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레버를 당기고 있다.


하지만 모든일이 그렇듯 시작이 어렵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감수하더라도 내 삶의 모양을 변형해야한다.

그런 처음 시작이 두려운 이유는 실패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 같은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자기확신을 키우기 위해서 '작은 성공을 여러번 경험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고 멘토들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니 스스로가 정한 길을 믿고 가야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는 만큼 성장한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할때 팔로우 0에서 시작하면서 과연 누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까 나는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 사람이 될까? 고민이 많았던 시간 

앤드류님의 자기 암시 글을 되뇌이며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곤 했다.



<럭키 드로우>책에서 발견한 또하나의 보물같은 문장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인정해 주면 된다.

내게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면 된다.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세상과 나를 이어주면 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만의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레버를 당겨 보는 것이다. P19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시작이 두렵다면 <럭키드로우>를 추천하고 싶다.

아직은 서툰어른인 나는, 나를 믿고 꾸준히 기록하고 묵묵히 나만의 길을 

찾아 사회적인 증거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적이 좌절감과 좋지 않았던 환경과 상황속에서

우울증으로 나쁜선택을 하려 했던 순간 유튜브로 만난 김미경학장님

좋은일로 꼭 찾아뵙고 싶다는 댓글을 현실로 이룬 순간을 잊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고 내가 노력한다면 롤모델로 생각했던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부터 “나는 만나지 못할거야,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내가 뭐라고…”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 기회도 

그냥 흘러 갔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브랜딩한

드로우앤드류님을 보며 나의 길을 찾아 성공하여 언젠가 그린룸에 

초대받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 아직 나는 초대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인생의 레버를 당길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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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의 수줍음 매일과 영원 3
유계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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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요즘 에세이를 오랜만에 읽었다.

작가가 서두에 한 말처럼 그녀의 표현은 친절하지 않았다.

집중하고 읽다가 잠깐 딴생각에 빠지면 여지없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맥락을 이해해야 했다.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은유적인 묘사로 풀어내며

어떤 글은 재미있게 또 어떤 표현은 섬세하게 어떤 상황은

당연한 일상임에도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면

첫장부터 불면에 대해 풀어내는 글은 불면을 겪는 나로서는 많은 공감이 갔다.눈을 감아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잠자리의 잠에 대해 들었지. 수만 개의 눈동자가 번갈아가서 짦은 잠을 나누어 잔다고 했다.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열려 있는 눈꺼풀이 있는 것 처럼. 창문이 너무 많아 일일히 닫을 수 없는 집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아는 만큼의 슬픔

아는만큼 경험해 본 만큼의 이해와 공감. 어쩌면 내 마음을 몰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알려고도 1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런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해를 구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행위를 안다는 것 자체도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누군가 그랬다. 많이 알면 좋은 일이 빈번히 생길 것처럼 많이 알아야 한다고 부추겼다. 하지만 이상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맞더라도 보이는 만큼 슬픔이 잦았다. 시선 두는 곳마다 슬픈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미 가진 것 이외에 슬픔을 보태고 싶지 않으며 아무때나 울컥거리는 곤란을 겪고 싶지도 않으므로 더는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꾸 알게 된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슬픈데, 슬픈 만큼 따라오는 다음이 없다. 누적된 슬픔은 나를 주저앉게 할 뿐이지 지켜 주지 않았다.


기억속 잊혀진 목소리

기억속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생김새와 모습은 얼추 기억이 나지만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무성영화처럼 입만 벙긋거리는 내안에 기억들이 소환된다. 그렇게 죽고 못살던 친구도 연인도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분명 아파서 슬퍼서 내기억 속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다.

H의 시를 읽다가 눈물 날 뻔 했다. 매우 감동적인 문장이 있어서 어떻게 쓰게 된 것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열여덟 살 H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 잊게 될 때에는 목소리부터 지워지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감고 아주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익숙한 배경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끌려 나와 입만 벙긋거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음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차례차례 한 시절의 주요 인물들을 떠올려 보았다.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과 아직 목소리를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나에게 아직도 잊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이 무척 속상했다.



기억의 죽음

"이제 더이상 기억나지 않아" 온 마음을 담아 청춘을 불태웠던 순간, 함께했던 사람들, 20년이 지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에 기억 속에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두근 거렸던 만남, 그 날의 커피향, 카페의 분위기, 나른하게 쏟아지 햇살을 맞으며 컵라면을 먹었던 바닷가 편의점, 사각사각 펜촉소리, 손에 묻은 잉크... 그 속에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기억이 눈송이 처럼 죽어 갔다는 것이겠지...

살아 있는 기억은 감각과 함께다. 기억은 서류 더미로 꽉 찬 거대한 캐비니에 어떤 사실을 요약해 끼워 두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장소가 뒤척이던 소리, 맞은 편 사람이 입고 있던 색깔, 창밖의 날씨, 피부에 스미던 온도들과 함께 재생된다. 그리고 기억은 죽어 가면서 빛과 소리, 냄새와 촉각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하나씩 떼어 낸다. 마침내 배꼽만 남은 기억은, 지상에 내려 앉아 천천히 사그라지는 눈송이처럼 죽어간다.

 

백년 뒤에 다시만나

세월이 흘러도 명작은 계속 전해진다. 아름다운 시 또한 누군가에게 전하고 전해져 남아있겠지. 자신의 시집에 백년뒤 만날 장소를 명시한  유쾌한 발상은 시가 페이지를 벗어나 실제의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되는 느낌이 든다. 백년 뒤  그 약속장소는 어디 일까? 그 장소에 나오는 백년뒤의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추억할까? 유계영님의 시집이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 나는 누가 사게 될지도 모를 백 권의 시집에 미리저자 서명을 하면서 약속 메시지 하나를 적었다. 백 년 후,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점 앞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혼동이 없도록 정확한 날짜를 적긴 했으나 시집을 구매한 사람의 당혹감을 고려하여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은 문구처럼 보이도록 적었다. 백 년 후 종이책 서점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존재하기 위한 분투

무수히 쏟아지는 일들 속에서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매순간 고분군투하며 살아간다. 저녁이 되면 녹아내릴 것 같은 몸을 안고 겨우 잠자리에 들어간다. 시키는 일만 잘하고 일어나는 상황에 반응하며 나 자신이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방해되는 요소를 헤치우고 나서야 시간의 빈틈을 찾아 흰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

존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가 개로서 존재하는것을 보면 나는 늘 감탄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매순간 분투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냐면, 차라리 일정 부분 기계가 되기를 자처해야 할 정도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면 남은 에너지가 거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텅텅 바닥나기 때문이다. 일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친구를 만날 여력 같은 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헐벗고 앙상한 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헐벗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나는 지금도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백지의 흰빛을마주하고 있다. 똑딱거리는 시침 소리를 듣고 있다.


말보다 글

잠이 들기전 눈을 감아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 속을 헤메이지 보면 그날에 쏟아낸 말들을 하나씩 점검한다. 부끄럽거나 실수해서 이불킥을 날리는 말들이 전쟁을 시작하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말들을 머릿속으로 만들어 낸다.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킬때도 전화 걸기전 심호흡과 무슨말을 할지 연습을 했다. 더듬거릴까 실수할까 내 목소리가 작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금의 배달앱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모임에서도 나의 말이 주춤거리면서 흥분을 거듭할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말을 밷고 나면 담을 수 없으니 즉답에서 멀어질때의 안전감, 글을 쓰고 나서 수정 할 수 있다는 안전감.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보다 실존적이고 시급하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말에 대한 문제로 나는 늘 곤란을 겪었다. 살면서 말 때문에 남에게 미움 사는 일도 있었고 어쩌면 그 비난들은 말보다 말이 아닌 것에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나를 용서 할 수 없는 지점이 대체로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목구멍을 떠난 말들이 끝까지 머리맡에 달라붙어 나를 책망하게 했다. 생각없이 뱉은 거친 말보다 충분히 조탁한 우아한 말이 더 진심에 가깝다고 믿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 덜 괴롭다. 나를 혼내느라 잠 못드는 밤이 두렵다. 즉답의 상황으로 멀수록 안전함을 느꼈다. 말보다 글이 아늑했다.


유계영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일상에 대한 감정을 이토록 섬세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당연해서 지나쳤을지도 모를 상황들, 격분 속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놓아버렸을 감정들, 스치듯 지나가는 짦은 단상의 생각들을... 모든 것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던 10대의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찌 할 수 없어 그져 무기력해져만 갔던 30대의 모습도 떠오른다.철저하게 자기 방어선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부럽기까지 하다.


에세이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글의 내용 중에 194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태엽시계를 사러 간 내용이 나온다. 매시간 마다 울리는 시계의 종소리 처럼 에세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정신없이 사느라 바쁨의 일상에 깊이 있게 나를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눈을 깨우는 소리 같은 느낌이다. "나 여기 살아 있어" 다시 읽으라고 하면 집중하느라 진이 빠져서 못읽을 것 같은 책이지만 마음 한켠이 비워지면 손이 가게 되는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나무들에게 배운 대로 주춤주춤 서로에게서 물러난다. 꼭대기의 수줍음처럼 만지는 것 말고 다가가기. 마음에 마음 닿아보기. 이것이 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포옹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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