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성폭력의 사각지대에 혼자 남겨진 이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하인츠-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의마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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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인지 알고 시작했으니, 이 책은 첫장부터 시험공부하듯이 읽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연필을 들고 긋고 적어가며 읽었다. 

한장한장 넘기기 힘들었다. 누구나 그럴거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이니까. 


내가 이 책을 서평단에 뽑아달라고 접수했을 때, 나는 그들을 떠올렸다. 

어느 시기였다고 말할 순 없다만(인스타엔 동창들이 바글바글하니까), 평범한 쉬는 시간, 누군가가 남자 그 자체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하다가 서로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경험을 털어놓았고, 그러다 보니 내 옆자리 내 뒷자리 내 앞자리 모두가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모두가 겪는 일이어야 했는가.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어본 적 없으며, 그녀의 방패가 되어주어야 할 엄마들까지도 잊어라는 말로 합심한 듯 말해 그들의 눈을 가려버렸을까. 

여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남자들의 경험담도 나는 꽤 들었으니까......

나는 딸을 키우면서 자주 그들을 떠올린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떠오르는 그 기억들을 잘 이겨내고 있을까. 버티고 있을까. 라고.


이 책은, 그 아픔을 경험한 피해자, 그리고 그 피해자를 응원하고 싶은 누군가가 읽어야 할 책, 이라고 선전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책은, 제발 부탁이건데, 변호사, 판사, 검사가 읽었으면 한다. 

그들이 그 고통에서 얼마나 오래 괴로워하고 헤매이며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없을 거다. 정말, 그럴 수 없을 거다. 

얼마 전 성폭행으로 자살한 아이가 내 딸과 동갑이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지금도 그 아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합당하길래 그들은 몇 년 정도만으로 그 죗값을 다했다며 자유의 몸이 되는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특히 친족일 경우 형량이 줄어든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제발 그들의 형량을 정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싶었다. 남자든 여자든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인 사람들에 대한 죄를 쉬이 봐주어선 안 된다. 


제목은 솔직히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건데,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 다행히 이 책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 대신, 너는 더 괜찮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어서 거기서 나오라고 해주고 있다. 


매우 불편하지만, 그래도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이며, 그래서 피해자들이 털복숭이 공주처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보물을 잊지말고 본모습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물론 이 또한 힘들지 싶다. 치료체계가 많지 않을 거 같아서.)

실은, 그래, 결국은 피해자 스스로 일어서고 벗어나고 노력해야하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결론이 너무 아프다. 피해자가 통쾌할만큼의 복수가 과연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들의 숨구멍이라도 트이게 해줄 무언가는 없을까. 이렇게 그들을 응원하고 숨기지 않고 지지해주는 것 밖에 없는가. 

우리에게 과제가 남았다. 부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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