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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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 서평단으로 뽑혀 가제본을 받았다. 가제본 서평은 오랜만이라 괜히 더 두근두근. 

책이 되기 직전의 모습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아이의 모습 같다고 할까. 

그것은 마치 오늘 서평글을 작성할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 아카리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18p)' 

이것이 아카리의 마음. 

그 말을 해준 건 그 당시 열두 살이었던 최애가 피터팬의 모습으로 해주었던 말이다. 


아카리는 뭐든 어렵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도,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친구에게 빌린 것을 제 시간에 돌려주는 것도, 아르바이트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것도. 

그런 아카리를 엄마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라고 말한다. 

그런 아카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아니, 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 수준급으로 해내는 것이 바로 최애인 '우에노 마사키'를 좋아하는 것. 

마사키에 관련된 것들은 카테고리를 정해 분류하고 정리해놓을 수 있으며, 모든 인터뷰 내용을 외워 마사키가 어떤 분류의 인간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토악질로 다 뱉어낼지언정 케이크 하나를 통째로 먹을 수 있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그런 아카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덕질은 그런 류가 아니었다. 

아카리가 말한데로, 최애를 좋아하는 방식에는 모든 행동을 믿고 떠받들던가,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던가, 최애와의 소통이든 팬과의 소통이든 소통 자체를 원하던가, 작품 그 자체만 좋아하는 등 많은 부류가 있고......

나의 첫 덕질이었던 만화 <드래곤 볼>의 손오공은 실제 인물이 아니어서, 오로지 작품 그 자체만 좋아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은 책과 화보집을 사려고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웃음이 났고,

그 후 듀스와 H.O.T를 좋아하면서 그들의 사진과 인터뷰 잡지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바로 아랫 동생들부터 쫓아다니는 것이 일반화됐다 한다면, 나는 시기자체가 그렇지 못해서. 그리고 그랬더라도 내가 갔을 것 같지 않아서. 나는 그냥 작품 그 자체만 좋아하는 분류로 봐야겠다. 

그 덕질의 행태는 역시나 책에서도 달라지지 않아,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사인회를 한다고 쫓아가거나 북토크를 한다고 가는 일 따윈 없는 대신, 그가 쓴 글은 모조리 찾아 읽고 모든 책을 소장해야 직성이 풀리는, '작품'만 보는 덕질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카리는 어떤 부류인가? 모르겠다. 아카리가 마사키를 사랑하는 방식은 이 모든 것을 초월했다. 

그건 마치......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같아 보였다. 이렇게까지 그를 응원하고 이해하고 그의 세계를 온전히 받들어, 그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단계라니.


아카리의 마음을 훔쳐볼 수 있었던 건, 세상에는 친구나 연인이나 지인이나 가족 같은 관계가 가득하고, 서로 작용하며 매일 미세하게 움직인다. 항상 상호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균형이 무너진 일방적인 관계를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희망도 없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친구를 뭐하러 계속 돌보느냐느니 한다.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데 멋대로 불쌍하다고 하니까 지겹다. 나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이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니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서로서로 배려하는 관계를 최애와 맺고 싶지 않다. 아마 지금 당장 나를 봐달라거나 받아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69P) 

​에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아카리는 엄마도 언니도 아빠도 나를 그냥 그대로 봐주지 않고 있다고 느꼈는지 모른다. 또 자신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지만 그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상냥하게 말해줄 수록 속마음은 그렇지 않잖아, 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너무 괴로웠던 거다. 

일방적인 사랑으로 충분한 아카리에게 이것은 너무도 편하고 행복한 사랑인 거다. 


최애가 연예계를 은퇴하고 누군가와 약혼한 사실을 어렴풋이 퍼뜨릴 때, 아카리는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된다. 마사키 외엔 삶을 유지할 필요도 없었던 아카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괜히 불안해서 뒷장을 쉬이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스럽게도, 이걸 내 식대로 해석해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아카리는 마지막에 '이것이 내가 사는 자세'를 알게 된다. 이족 보행이 힘들면 손도 써가며 걸어보지 뭐. 뭐라도, 어떻게라도, 다시 살아보지 뭐. 라는 생각을 먹었다는 것이 기특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카리는 그래도 어른이 되야 한다고 어쩌면 알고 있었고 마음 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면 어떠니. 내게 맞는 방식대로 일단을 살아봐야지. 그지?


책 전체에서 보여주는 덕질은 전혀 내게 이해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아카리를 응원한다. 

이제 내가 너를 덕질해줄게. 아카리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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