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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와 수도사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327
조 앨런 보가트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한정원 옮김 / 비룡소 / 2023년 12월
평점 :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수도원으로 작고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섭니다.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회랑과 긴 복도를 지나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오니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 하나가 보입니다. 흰 고양이는 문 아래로 앞발을 넣어 자신이 온 것을 알리자 곧 방문이 열리고 돌아온 고양이를 반깁니다. 수도사이자 학자인 그는 고양이는 함께 지냅니다. 흰 고양이의 이름은 팡구르.

팡구르와 수도사는 밤이 깊도록 촛불 곁에서 각자의 일에 매진합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거운 수도사에게 책 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들은 보물처럼 값집니다. 반면 흰 고양이 팡구르는 가만히 엎드려 벽을 노려보며 생쥐를 쫓는 조용한 사냥을 즐기죠. 둘은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결코 서로의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배움을 얻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더듬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글들의 숨은 의미를 찾는 길고 지루한 과정에서 비로소 답을 찾게 될 때 희열을 느낍니다.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던 팡구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잡고 기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거죠.
“우리를 즐겁게 하는 모든 게 곁에 있다네.
그래서 우리는 각자 만족한다네.
우리의 이야기는 늘 행복하다네.”

그림책의 텍스트에 쓰여 있는 이 부분이 마음에 남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그 속에서 작지만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통해 삶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특히 빛과 어둠의 명암을 잘 표현하는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은 천년 전 중세시대 아일랜드의 수도원으로 우리를 타임슬립시켜 줍니다. 마치 먹으로 그린 듯 농담이 살아있는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니 마음속의 고요함이 증폭되는 느낌도 들어요.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아 나를 돌아보고 주변 관계를 살피며 신년 계획을 세우고 싶은 분들께 이 그림책을 추천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