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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스리랑카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현은 필리핀계 친구인 요한을 향한 '동남아'라는 별명이 불편하다. 그걸 지적하면 이런 말들이 돌아온다. "야, 그럼 요한이 동남아지 유럽이냐?" "걔가 싫대냐? 너한테 직접 그랬어? (자기가 직접 싫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
주현은 요한을 '동남아'라고 부르며 데리고 다니는 승윤 덕택에 대치동 강의를 무료로 듣고 있다. 그건 주현에게 큰 기회다. 어쩌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도 있는 기회. 주현은 승윤을 '들이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그러고 나면 자신이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한편 대다수 한국인들은 스리랑카인과 필리핀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유럽인들이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지 못하듯이. 따지고 보면 스리랑카는 남아시아에 속한 국가이지만 주현에게도 요한처럼 '동남아'라는 별명이 붙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주현을 '동남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 사이에서 주현과 요한의 위치는 매우 다르다. 그렇기에 주현은 승윤을 들이받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다. '동남아'라고 하지 말고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냐고. 아이들 사이의 이런 미묘한 권력관계가 리얼하게 표현되어 흥미로웠다.
승윤이 살다 온 '호주'는 멸칭이 되지 않는데 왜 요한의 고향인 '동남아'는 멸칭이 되는지, 엄마는 왜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면서도 진상 손님 앞에서는 어리숙한 동남아 아줌마를 연기하는지, 조각조각난 정체성의 파편들을 짜맞춰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현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주민 2세를 넘어 3세까지도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는 '동남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인 요한 같은 인물도 있을 테고,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이미지인 주현 같은 인물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과 다를 것 없이 다양하고 고유한 이주민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래야 한다거나 저래야 한다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물음표를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보이는 작가의 필력이 미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