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의 편지 - 삶을 긍정하는 유연한 어른의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NHK <클로즈업 현대+>·<시루신> 제작부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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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소위 예술영화라 불리는 비주류(?)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없고 상영한다해도 시간대가 애매--한 그런 영화를

사뿐한 발걸음으로 찾아다니던 그 시절, 키키 키린을 만났다.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2008)라는 영화였다.

담담하지만 당차게, 복잡다단한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에 감흥했다.

인간의 본연이란 그런 거겠지, 막연한 동의를 했던 것 같다.

그 후 <도쿄타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최근에 본 <일일시호일>까지.

그녀의 연기는 주조연을 떠나 눈부시게 빛났다.

10년이 넘는 암투병 중에도 꾸준히 배우생활을 하며 노장의 저력을 보였던 키키 키린이

연기와 함께 계속해온 것은 다름 아닌 '편지쓰기'였다.

2018년 9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NHK [클로즈업 현대+] 프로그램 제작진은

키키 키린이 측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편지를 많이 보냈음을 알고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방송을 기획했다.

이 방송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시간상 담지 못한 에피소드를

NHK 나가노의 [시루신]에서도 '삼가 키키 키린 님께 아룀'이라는 제목으로 연이어 방송했다.

<키키 키린의 편지>는 이 두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이들은

진심을 담은 편지의 가치를 아는 '키키 키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 책에도 그녀만의 매력과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1장 소중히 가꿔온 인연

제2장 청년의 미래를 응원하다 - 성인의 날을 맞은 이들에게 보낸 편지

제3장 사는 일 죽는 일

이렇게 총 3개의 장 중에서

나는 '제2장 청년의 미래를 응원하다'에서 특히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마다

일면식도 없는 청년들에게 손수 붓을 들어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마음과 자세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 막막한 미래로 한 발을 내딛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저 좋은 말이 아닌 진심어린 말을 전하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대의 어른'이라는 표현이 계속 떠올랐다.

편지를 받은 그 당시에는 키키 키린이 전하는 뜻을 몰랐던 청년들도

사회에 나가 직접 겪고 배우며

비로소 깨우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음을 이 책은 전한다.

성인의 날 편지를 받은 한 청년은 인터뷰를 통해

'편지는 자기와의 대화'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귀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청년의 생각을 듣고 자기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라고 키키 키린을 회상한다.

성인식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며

사후 그녀에 대해 이렇게 이해해 주는 광경이란,

그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진심 가득한 편지의 힘!

생을 마친 이후에 미담이 새록새록 나오는 그런 사람이 있다.

활동하던 시절에는 독설가라고 그녀의 올곧음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보며

하늘에서도 행복하시기를 빈다.

 

하루하루 더해가는 내 나잇값도 하기 힘든 나날에

시대의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면면이 이렇게 재조명되는 책, 아--주 칭찬한다.

아직도 살아숨쉬는 멋진 어른의 생각을,

좋은 세상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읽고 자극받기를 바란다.

덧 하나.

키키 키린 씨의 사위가 모토키 마사히로 임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의 작품 중 <굿'바이(おくりびと, Good & Bye, 2008)>를 참 감명깊게 봤는데,,,

그때의 기억도 되살릴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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