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해항로 민음의 시 161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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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해 항로를 읽었다.


 


결국, 시는 말하지 않은 비탄함이었다. 장석주의 오랜 울림이 상상력의 뜬 물을 거두고 묵은 쌀을 씻게 했다. 생각건대, 낙타를 만나거든 낙타가 되라는 구절은 있는 그대로의 동화이며, 이는 투명함 그 자체의 순박함이었다. 시 쓰기도 시 읽기도 어려워지는 요즘이다. 읽는 것이 쉽다는 것은 또한 생각할 것도 많다는 것이다. 꿀꿀 거리며 머릿속을 진탕으로 만들어버린 돼지 새끼들을 기침 한번으로 뱉어낼 수 있다면 시인의 눈물 한 방울 마저도 아까울 것이다. 봄은 오지 않았지만, 춘곤증은 제 걸음보다 빨리 왔다. 시인의 시는 물설고 낯선 영월에서 베개 삼아 누울 수 있는 마루였다.


 

장석주의 시는 산뽕나무에 푸른비 금광호수에 푸른비 처럼 그동안 경시 되었던 옛것 그대로의 서정성과 운율을 오려내었다. 난해함에 갈증이 난 독자에게 단비처럼 목을 적셔주었다. 대가의 솜씨로 황폐한 땅을 옥토로 만든 이번 시선에서, 나는 옛날 내가 살던 집을 돌아가 봤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그 관행에 뒤처지면 영원히 낙오 될 것 같은 적막 속에서

시는 느리게 사는 삶, 특유의 맛을 보여줬다. 싸우지 않아도 될 것에서 싸워야 하고, 싸워야 할 것은 모른체 하고 살아야 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남긴 담화 그 자체였다.

 

옛집은 처마만 수리한체 그대로 있었다. 오히려 처마를 수리했다기 보다, 세월을 이겨내기 위한 버팀목 같았다. 그대로만 있어줬으면. 그 집에서 나는 어린 시절 밀린 방학 숙제를 했고, 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저녁노을을 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노을을 잊어버렸다.

시인은 따금하게 꾸짖는다. 덧 없다, 덧 없다.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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