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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바느질 수다를 나누기 위해 이 책에는 엄마와 딸, 할머니, 친척, 가까운 이웃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총 아홉 명의 이란 여인이 등장한다. 나를 포함해서 화려한 그림체의 만화에 길들여진 이에게 이들 등장인물의 생김새는 다소 투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어떤 의미로 아주 화려하다.
첫 페이지에 대가족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하는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남자들은 식사 후 낮잠을 자러 가고, 여자들은 모여서 뒷정리를 한 후 차를 마실 준비를 한다. 히잡과 차도르에 가려진 이란 여성들의 관심거리는 남편일까 자식일까. 바느질감을 펼쳐 들고 과연 얼마나 고루하고 보수적인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바늘은 무슨. 이 놀라운 아홉 명의 여인들은 한 손에는 찻잔,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토론’을 나눈다. 바로 ‘뒷담화’다.
「남 흉보는 일은 말이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거야….」
매일 아침 아편이 든 차 한 모금에 천사처럼 상냥해지는 할머니의 말처럼 그녀들은 천천히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을 가진다.
첫 바느질 수다의 주제는 할머니의 어릴 적 친구 나히드의 결혼 첫날밤 소동이다. 연인이 있었지만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게 된 나히드. 이미 연인과 선을 넘어버린 나히드는 결혼 첫날밤 자신이 처녀가 아니란 게 밝혀질까 두려워 견딜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나히드에게 묘책을 알려주는데….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남편의 중요부위에 칼질을 해버린 나히드의 첫날밤 이야기에 모두 폭소하고 만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히드를 부러워하는 한 여인이 있다. 남자 물건은 구경도 못 해보고-성령으로 잉태하사- 애를 넷이나 낳은 여인이다. 작가는 그녀의 경이로운 임신스토리를 딱 세 컷으로 정리했다. 그 중 두 번째 컷이 이 스토리의 백미다.
또한 여자의 입장에서 유부남을 만나는 게 얼마나 완벽한지도 재치 있게 표현한다. 남편의 더러운 와이셔츠를 빨고 다려서 빳빳하게 해 놓으면, 남자는 그 옷을 입고 애인을 만나러 나간다. 집에서는 투정만 부리더니, 애인 앞에서는 위트 넘치고 매너 끝내주는 완벽한 남자로 변신한다.
「결혼하면 뭐가 좋니? 남편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을. 그냥 유부남을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면 되는 거야.」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 것이다. 불륜을 권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인 남자들의 이중적인 면을 비꼬았다는 걸. 이 만화, 깜짝 놀랄 만큼 개방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이란 여성들의 삶을 오해한지도 모르겠다. 차도르 아래에서 남성에게 순종하고 평생을 남성의 그늘에서 살 것만 같던 그녀들도 연애를 하고 이혼을 하고 심지어 불륜도 한다는 사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약간 의아하다. 정말 이란에서 여자들이 이혼을 하고 불륜을 해도 되나? 지금도 남편과 친족 손으로 명예사형이 자행되는 나라가 아니던가? 부랴사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70년대 이란은 흡사 지금의 터키처럼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왕조국가였다고 한다. 70년대 말 강경파 이슬람 원리주의자 호메이니가 일으킨 이슬람혁명으로 여성의 지위가 지금처럼 퇴보하게 된 것이다. 역사가 거꾸로 간 셈이다.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가 69년생이니, 그녀가 열 살 때 나라가 격변했다는 이야기다. 작가가 자신의 유년기를 그린《페르세폴리스》를 읽어 보면 이란 사람의 눈에 비춰진 이슬람 혁명도 쉽게 알 수 있겠다. 이란의 상황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으면서 이란과 이슬람사회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려는 작가 또한 현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망명인의 신분이라고 한다. 정치와 종교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결합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처럼 이슬람하면 먼저 테러리스트가 떠오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차도르를 벗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 할머니, 놀러온 동네 아줌마들의 모습이 겹쳐 보일 테니. 이란 시장도 개방되었으니 이란의 여인들이 공원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예전처럼 당당히 차도르를 벗어던지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