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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5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요석 ㅣ 미생 5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미생 72수...
팀에 새로 부임한 천과장은 무언가 세력싸움을 하는 듯한 제스쳐로 '일에만 열중하는' 오팀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 이때, 보고만 있던 오팀장은 단 한 마디의 말로 천과장을 압도하는데..
오팀장은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해준다...
왜 회사가 일하는 공간이 아닌, 서로간의 정치싸움으로 소모되는지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저기서 말하는 게임이 애니팡 같은건 아닐테고..
많은 직장인들도 공감할 상황이지만, 우리는 일을 하러 사업장에 가서,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기도 부족한 상황에 일 외의 것으로 스스로를 소모하게 된다. 보통 그런 과정을 정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사실 오팀장 정도로 일에 순수하게 몰두하는 직장인은 정말 드물 것이다. 대개는 다소 능력있는 직장인이라 할때 오팀장과 천과장 사이 정도에 위치한다. 일에 대한 능력과 동시에 분위기를 내것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감.
<미생>은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사업장을 다루고 있지만, 작은 회사에서만 일해본 나로서도 저런 소모적인 정치성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기에 저 장면은 너무 와닿았다. 말그대로 일에만 몰빵하던 나는, 그 사업장의 모든 이로부터 인정을 받았음에도 (최소한 일에 대해서는), 어느 순간부터 그 회사의 중역인물에게서 알수없는 태클을 계속 받았다. 당시에도 그랬거니와 돌이켜봐도, 내 잘못이 전혀 없는 상황인데 억지로 내 허물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정작 그 인물은 일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워낙 사장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라 아마 그 회사가 망할 때까지는 자리보전을 하리라 보인다.
그 인물과는 내가 회사에서 위치싸움을 할 자리가 아니였기에 뭐라 대놓고 말하진 못하였으나, <미생>의 이 컷, 여기서 나오는 오팀장의 명대사 "일을 해 일을. 회사 나왔으면. 힘 빼지 말고."는 정말이지 내가 그 인물에게 해줬으면 좋을 딱 그 정도의 대사다.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최소한 그 순간에는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회사에는 플러스 요인이다. 근데 정작 그 회사의 중역이라 하는 인물은 자신의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에 바쁘다. 회사에 플러스가 되는 일에 대한 열정, 노력을 깍아내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기 좋다. 회사는 그렇게 도태되어 간다. 운영이 힘들다는 둥, 상황이 안 좋다는 둥. 근데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없다. 일 잘하고 순수한 사람들은 다 떠나고, 정치적 인물들만 남아서 회사운영에 해충같은 역할을 함에도 그 회사들은 망할때까지, 아니 망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미생>으로 돌아와서 보자면, 이런저런 위기를 다 잘 풀어나가는 듯 보였던 오팀장 역시 조직의 그런 정치적 생리에서는 승자가 되질 못한다. <미생>은 역시 판타지 요소는 거의 빼버린, 너무 현실적인 작품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과연 나같은 사람이 (또한 오팀장 같은 인물이) 혐오하는, 조직의 정치적 요소는 필요악일까? 그건 어쩌면 사라질 수 없는 조직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능력만으로 그 조직에서 인정받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바램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조직의 정치적 생리를 인정하고 그와 타협할 자세가 돼있어야 한다. (그 조직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미생>의 1부는 완결됐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포석을 깔며 나름 오팀장 3인방 모두에게 희망적인 엔딩으로 1부는 끝이 난다. 그들이 주역이 되는 조직은 일단 '정치성'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듯 하다. 그러나 그 조직도 성장한다면 어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현실의 나는 오팀장도 되지 못하고, 오팀장같이 멋진 상사를 인맥으로 갖게 된 장그래나 김대리도 되지 못한다. 조직의 정치성은 내게 앞으로도 생각해 볼 과제에 분명하지만, 내 현실에 대해선 난 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 여전히 일에 몰빵한다. 가 뻔하게도 내 답인데, 조직의 정치싸움에는 아무래도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뜩이나 피곤한 일상에 피곤함을 더 안긴다. 대신, 어느 조직에서라도 승진에 승진을 하며 '끝발' 있는 인물로 살아남는 야망 같은 것 역시 포기해야 한다. 뭐 아무래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나로서는 '콜'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오팀장 같은 팀에 들어가 일하게 되는 게 그나마 갖고 있는 판타지라면 판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