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욥기 - 고통, 정의, 아름다움에 관한 신의 드라마 IVP 특강 시리즈
권지성 지음 / IVP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지성, 특강 욥기, (서울: IVP, 2019)

이 책을 읽고 욥기가 다시 좋아졌다. 욥기의 심각한 내용은 욥기를 공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욥기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고 욥기에 푹 빠지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교회에서 늘 들어오던 교리적이고 고착화된 해석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 3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존의 주석가들처럼 욥이 회개했다고 보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 정의의 요구를 그만 두는 것뿐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 책의 가장 놀라운 반전이자 이 책을 꼭 봐야하는 이유이다. (14)

두 번째는 욥을 마냥 오류와 허물이 없는 존재로만 보지도 않고 욥의 문제점도 탁월하게 지적한다. (7, 9)

세 번째는 세상의 부조리와 하나님의 폭력에 대해 지적함에도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이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는 점이다. (8, 13)

 

욥기를 읽으면 까뮈를 생각나게 한다. 까뮈의 그 유명한 말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오직 자살이다. 왜냐하면 자살은 이 세상이 살만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이 말은 꼭 욥을 연상시키게 한다. 부조리한 세상에 이 세상의 정당성을 묻는 모습이 까뮈와 욥은 매우 닮아있다.

 

우리가 욥기를 대할 때 한결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 무고한 자의 죄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왜 하나님은 구원하지 못하시는가? 하나님은 악인의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의 하시는 것이 아닌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 세상은 한없이 정의롭고 평화롭고 정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터기 관광지 해변에 파도에 밀려와 죽은 3살 시리아 난민 쿠르디나, 2019년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엘살바도르의 발레리아와 그의 아버지에게 이 세상은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욥기는 정의의 부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욥기의 질문을 이러한 사건들을 보거나 경험할 때 나의 질문으로 또는 우리의 질문으로 던지며 욥기의 대답을 구해본다.

욥기는 과연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가?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욥기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다.

질문은 던지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그 질문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의 질문을 교정하고 새로운 질문을 우리가 던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욥기의 대화에서는 수많은 질문들이 오고 간다.

신중한 신학자 엘리바스의 인간의 고통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대변하는 그의 신학적 해답, 그러나 어떤 대답도 욥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3)

전통의 수호자 빌닷은 전통적 이론만으로 세상을 너무나 순진하게 바라보며 현실감각이 없는 책상신학의 문제점을 절실히 드러낸다. 순진한 탁상공론이 탁상행정을 만들고 그럼으로 실제의 고통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함으로 공상의 신학만을 드러낼 뿐이다. (5)

지혜자 소발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를 주장하며 욥의 고통의 원인은 욥의 죄라고 지적한다. 특히나 욥이 한 말을 되풀이하며 욥을 직접적으로 비난한다. 그러나 그는 욥의 말을 오독하고 있고 오해하고 있다. 소발의 말은 스스로의 논리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모든 원인은 신비가 아닌 욥의 죄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논리는 욥에게 적용되지도 않고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6)

 

이 책은 각 챕터의 마지막마다 욥기의 내용들을 일목정연하게 정리해서 말해주고 있다. 얼핏 들으면 3명의 친구들의 말은 모두 인과응보의 논리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서 차이점을 알기 어렵다. 이 책은 각각의 사람들이 하는 비슷한 말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잘 집어줌으로 인해서 각자의 메시지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줌으로 각자의 메시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욥기가 하나님의 신정론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욥기를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우리 사회의 사회악과 세상의 불평등과 알 수 없는 고통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한 걸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향과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성경을 읽어가면서 그렇게 많이 읽었던 욥기에 깜짝 놀란 구절이 있다. 그 유명한 구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구절의 문맥에 빌닷이 욥의 자녀들의 죽음이 그들의 죄에 있다는 비난이 같은 문맥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욥의 자녀들의 죽음을 죄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불쾌한데 그 구절에 그 유명한 구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서의 구절을 얼마나 잘못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구절(8:4-7)은 불행한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폭력을 오늘날에도 얼마나 자주 되풀이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한 사람의 어리석은 해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욥기 23:10절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구절도 욥의 경건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무고함을 말하는 구절로 본다. 갑의 폭력 같은 하나님의 폭력에 순순히 당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약자스러운 모습을 취하지 않고 저항하고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 보면 되바라져 보이는 욥의 저항은 결코 신앙 없음이 아닌 신앙 가진 자가 취하는 또 다른 모습을 엿보게 한다.

 

이 책은 모든 부분을 주석한 책은 아니다. 그러려면 WBC처럼 3천 페이지의 엄청나게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언젠가 주석 책을 낼 것은 후일로 미루고 잘 정리된 이 책만으로 만족하는 것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의 무게를 얼마나 과소평가하며 평가절하하며 공감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세상에는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 있으며 그러한 고난을 당한 자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질문의 방향을 바꿀 것을 요청한다.

욥의 고뇌는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며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한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 하나님의 정의를 다시금 묻게 하고 욥의 고뇌를 통해 세상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욥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세월호를 겪은 우리에게 저자는 고통 받는 자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아픔을 우리가 끊임없이 읽어내야 함을 파토스를 품은 신학자로서 계속해서 외치고 있다.

욥기는 이 세상의 부조리가 계속되는 한 계속해서 읽혀지고 읽어질 책이다.

그러한 고통과 고뇌에 대해 이 책은 욥기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교과서이다.

 

저자는 욥기 전공자로서 욥의 질문에 매우 오랫동안 고민하고 묵상하며 치열하게 고뇌한 흔적을 보여준다. 그럼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악의 복잡다단한 차원의 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책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비해 어렵지도 않으면서도 깊은 통찰력을 선사하기 때문에 1독으로 끝낼만한 책이 아니다. 다독을 할수록 이 책의 매력에 빠질 만한 짧으면서도 깊이 있는 책이기에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국에 욥에 대해 새롭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권지성이라는 학자를 이 책을 통해 알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출판사의 책을 제공받아 서평을 씁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자 2019-07-2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욥기 정말 이 정도로 답이 될까요? 그 많은 욥기 저술들 계속 나오는 이유는 신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 더 깊은 문제가 있지 않을지----. 최근에 나온 ˝유일신 야훼˝라는 역사학자가 지은 책의 결론에는 전혀 다른 해석이 보이던데 생각해 볼 만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