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제가 되고 있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를 동시에 읽었다. 지난 해 엄청난 베스트셀러라는 소문에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베스트셀러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있었지만 그래도 읽게 된 것은 지방의 간호사 출신 작가라는 작가의 이력이 너무나 호소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정유정의 소설은 장점과 단점을 너무나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이한 장점과 단점은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에서 똑같이 드러난다. 정유정 작가의 최고의 장점은 뛰어난 스터리텔러라는 점이다. 신인작가들의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사변의 나열이나 관념적 진술이 그녀의 소설에는 없다. 문학, 혹은 모든 예술은 "추상적 이념의 구체적 표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미덕이다.  

 

  더구나 정유정의 소설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포진해있다. "7년의 밤"의 주인공 서원은 어린 소년임에도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믿고 따라는 사랑스러운 소년이다. 며칠 같이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몇년씩 돌보아주는 승완도 바람직하기는 마찬가지다. 야구선수는 현수는 죄책감이라는 구렁텅이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는 대단한 부성애를 가진 감동적 인물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은 거의 드라마적으로 멋있다. 좋은 몸과 불굴의 의지, 유머를 가진 재벌 2세. 승민이 거듭된 탈주 실패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때 독자들은 그의 무사귀환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고 몰입하게 하는 힘, 그것이 정유정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이제 단점을 말하자. 단도직입적으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는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소설화이다. 솔직히 소설인가도 회의가 든다. 그거은 단지 로망(이야기)일 뿐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작가 자신이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쇼생크 탈출"을 그대로 합쳐둔 느낌이다. "7년의 밤"은 "샤이닝"을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샤이닝이나 뻐꾸기 둥지 같은 위대한 작품을 다시 해석하고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흠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카프카나 베케트 같은 작가는 끝없이 다시 차용되고 다시 쓰여지고 있으며, 그럴 이유도 충분하다.  

 

  그러나 정유정의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뻐꾸기 둥지를 가져오고 샤이닝을 가져왔는데 주제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알려진 바대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월남전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샤이닝"은 가부장제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미국문화의 존질에 대한 탐구가 깔려있다. 기왕에 그 설정을 가져왔다면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댐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한 탐구가 있었어야 한다. 정유정의 소설에서는 이 부분이 완전히 빠져있다. 

 

  스티븐 킹은 "스토리가 먼저고 주제는 그 다음"이라고 자신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가르친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별 다른 이야기 하나 못 맞추면서 독자를 가르치기에 바쁜 소설도 많기에 이야기에 추실하다는 것은 진정 미덕이다. 허나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과정에서 작가는 최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한다. 만일 그랬다면 "7년의ㅐ 밤"에서 강은주와 같은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정유정 작가는 여자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을 설정하고 그렇게 어이없이 죽이는 손쉬운 처리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말이 나왔길래 말이지만 "7년의 밤"의 결말은......안습이다. 헐리웃 영화 중에서도 B급 영화도 요즘은 이런 결말은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악몽을 생각하면, "7년의 밤"은 성찬에 가깝다. 한 끼 잘 먹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령"은 추리라는 형식에 분단 현실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한다. 

  첫째, 범인은 누구인가.   

  둘째,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가. 

  독자는 손쉽게 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의 생각이 맞나 의문이 들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게 될 것이다. "유령"의 매력은 이 모호함에 있다. 

 

  기왕에 추리라는 장르를 선택했으니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의 개연성과 단서를 추적해 가는 절묘함이 빠진다면 많은 독자들이 서운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 명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명이 범인일 수 있는 개연성과 단서를 책 전반에 걸쳐 교묘하게 펼쳐 놓았다. (스포일러를 피해 말하자면) 범인은 세 사람 중 누구도 가능하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여전히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은 자가 범인일 가능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즉, "유령"은 장르적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독자도 추리소설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작가는 추리소설 그 너머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가리켜 "추리소설을 이성의 한 영역으로부터 끌어내어 사회의 한 조각"으로 만든 작가라고 했는데, "유령"의 작가 강희진은 이성의 한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본질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작가가 보는 우리 사회의 본질 역시 모호함이다. 모호함은 내용에서도 아낌없이 드러난다. 

 

  작가의 인터뷰를 뒤져보니 그는 2011년의 이명준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분단이라는 코드는 이 소설을 이해하는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광장'의 이명준이 남과 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경계에 서서 어느 한 쪽으롣 가지 못한 인물이라면 "유령"의 주인공은 모든 것의 경계에 서있다. 그는 탈북자이면서 게임광이고, 거리의 삐끼면서 배우이고, 이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이고, 하림이면서 동시에 주철이다. 왜 이토록 주인공은 경계에 서있는 것일까. 왜 이토록 소속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것일까. '존재한다는 것은 소속됨을 의미한다'는 카프카의 말을 빌자면 소속에서 배제된 "유령"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 이유를 생각하자면 좁게는 유령처럼 떠돌아야 하는 탈북자의 고독 때문이겠고, 넓게는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존재의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모호함이라는 주제를 가장 명백한 이성의 영역의 추리라는 장르로 풀어내고 있다. 구조는 주제를 함축한다는 말을 진리라고 받아들인다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의 역설의 시도하는 있는 셈이다. 아마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매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재밌고, 슬프지만 상당히 아트한 소설. 추리소설로 읽든, 순수문학으로 읽든 "유령"은 오랜만에 읽는 수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이 참 좋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