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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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령"은 추리라는 형식에 분단 현실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한다. 

  첫째, 범인은 누구인가.   

  둘째,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가. 

  독자는 손쉽게 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의 생각이 맞나 의문이 들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게 될 것이다. "유령"의 매력은 이 모호함에 있다. 

 

  기왕에 추리라는 장르를 선택했으니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의 개연성과 단서를 추적해 가는 절묘함이 빠진다면 많은 독자들이 서운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한 명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명이 범인일 수 있는 개연성과 단서를 책 전반에 걸쳐 교묘하게 펼쳐 놓았다. (스포일러를 피해 말하자면) 범인은 세 사람 중 누구도 가능하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도 여전히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은 자가 범인일 가능성은 그대로 살아있다. 즉, "유령"은 장르적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독자도 추리소설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작가는 추리소설 그 너머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가리켜 "추리소설을 이성의 한 영역으로부터 끌어내어 사회의 한 조각"으로 만든 작가라고 했는데, "유령"의 작가 강희진은 이성의 한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본질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작가가 보는 우리 사회의 본질 역시 모호함이다. 모호함은 내용에서도 아낌없이 드러난다. 

 

  작가의 인터뷰를 뒤져보니 그는 2011년의 이명준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분단이라는 코드는 이 소설을 이해하는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광장'의 이명준이 남과 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경계에 서서 어느 한 쪽으롣 가지 못한 인물이라면 "유령"의 주인공은 모든 것의 경계에 서있다. 그는 탈북자이면서 게임광이고, 거리의 삐끼면서 배우이고, 이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이고, 하림이면서 동시에 주철이다. 왜 이토록 주인공은 경계에 서있는 것일까. 왜 이토록 소속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것일까. '존재한다는 것은 소속됨을 의미한다'는 카프카의 말을 빌자면 소속에서 배제된 "유령"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 이유를 생각하자면 좁게는 유령처럼 떠돌아야 하는 탈북자의 고독 때문이겠고, 넓게는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존재의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모호함이라는 주제를 가장 명백한 이성의 영역의 추리라는 장르로 풀어내고 있다. 구조는 주제를 함축한다는 말을 진리라고 받아들인다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의 역설의 시도하는 있는 셈이다. 아마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매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재밌고, 슬프지만 상당히 아트한 소설. 추리소설로 읽든, 순수문학으로 읽든 "유령"은 오랜만에 읽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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