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벨 최후의 자손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최욱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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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학상 시리즈의 마지막 책, "슈나벨 최후의 인간"은 좀비를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지금은 회고의 시대가 되는 90년대 초, 대학가마다 소극장에서 고다르의 영화를 보여주던 그 시절에 (전두환 아들의 소유로 알려진) 시공 그리폰 북스에서 SF 고전들을 펴내면서 드디어 우리나라도 SF의 부흥이 오는가, 하고 잠시 설레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시절 우리 사회는 계속 진보할 것이고, 우리는 조금씩 더 진보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듀나와 배명훈이 등장하긴 했으나 SF는 여전히 우리나라 독서계의 진정한 컬트라 할 수 있다. SF가 홀대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SF 작가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SF 소설을 SF 영화들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슈나벨 최후의 자손"을 읽으며 대니 보일의 "28일 후"와 "28주 후"를 떠올렸다.


  이야기는 사실 전혀 다르다. 세겹의 액자 소설 형태를 가지고 있는 "슈나벨 최후의 자손"의 이야기는 '버려진 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좀비가 된 인류가 있고, 그들은 정부의 방제에 의해 잠시 활동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좌절된 욕망의 상징과도 같은 G가 등장하고 G의 욕망과 좌절이 또다른 좀비 후손에게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을 파묻으며 그 위로 신도시가 건설된다.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욕망과 좌절, 지배하는 자와 당하는 자라는 코드가 좀비가 출몰하는 암울한 도시의 배경으로 촘촘하게 박혀있다. 따라서 작가가  아무리 이야기만으로 읽어달라고 해도, 좀비는 탄생부터 현실에 대한 은유로 등장했고 결국 정상과 주류, 기업 대 비정상, 비주류, 소모품의 이야기로 읽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 시체를 딛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들 또한 길들여진다는 섬뜩한 결말이란..... 이명박 시대를 견딘 우리는 이토록 비관적이다.


  "슈나벨 최후의 인간"이 대니 보일의 영화와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통렬한 비극성. 좀비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리쳐드 매드슨이나 맥스 브룩스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정념과 비극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대니 보일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대니 보일은 "28개월 후"를 언제 만드나? ㅠㅠ) 특히 '황혼'이라 이름 붙여진 좀비 퇴치 작전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반은 좀비 이야기이고 반은 프랭켄쉬타인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건설한 피라미드에서 좀비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G의 최후는 이고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프랑켄쉬타인 박사와 대로 겹친다. 소설은 G의 아들 C가 죽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가 정말 죽은 것인가, 하는 의심이 있다. 죽은 체 하고 좀비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지점에서 2부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꼭 2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소설이 공모용으로 쓰여짐으로 인해 200자 원고지 천 매의 제약을 너무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소설은 좀 더 길었어야 한다. G의 러브 스토리나, 그 아들 C의 어린 시절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들이 더 자세히 나와있었다면 이 작품은 가히 압도적인 소설이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왜 공모는 꼭 천 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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