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안화수(紅顔禍水)>
-미녀를 탐한 남자들의 종말
천지옌화, 리스야 저 |심규호 역 |중앙북스 |2013.09
중앙북스가 보내 준 4번째 책.
고맙다.
제목은 낯설어 얼핏 들어오지 않았는데, '-미녀를 탐한 남자들의 종말'이란 부제가 강렬하다.
누구도 이성 문제에 자유롭다 소리칠 이는 흔치 않을 터. 배비장은 9대 정남이라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제주 기생 애랑에게 낭패를 당했고, 평생을 수행한 어느 스님도 여인의 유혹에 넘어갔고, 요즈음도 여자 문제로 신문에 오르내리며 곤욕을 치르는 공직자도 있다.
홍안화수(紅顔禍水)
-'홍안'이란, '젊은이, 젊은 시절'을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뜻한다.
-'화수'란 '재앙, 화의 근원'이란 뜻이다.
이 책은 '아름다우면서 나라와 백성에게 재앙이 되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다.
녹주, 식규, 하희, 앵앵, 문강, 조비연, 조합덕 자매, 장여화, 이부인, 말희, 달기, 포사, 양귀비, 진원원, 서시, 초선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남자를 망치고, 나라를 기울게 하고, 백성을 고단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 여인들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시각은, 통념과 다르다.
절세 미녀들이 불러온 재앙, 군주들의 비참한 몰락과 죽음은 남자들 사이에 일어난 이익과 욕망의 충돌이자, 기만과 배반, 모욕과 반항이 가져온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 여인들은 피동적이었고, 선택이 없었던 희생자인데 남성우위, 남성중심의 역사, 작가들이 진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내 나름으로 저자의 의도를 비유하자면, 술이나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한 이가, 대개 술이나 도박을 모든 재앙의 원인으로 떠넘기지만, 실은 그것을 절제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전적으로 그 책임있다는 논리다. 옳은 지적이다.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도 있지만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만났다.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시각으로 인물들을 조명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서사의 배후에도 패권이 존재한다. 역사든 소설이든 남자들에 의해 쓰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멸은 여자를 두려워하는 남자의 유약한 심리를 체현한 것이고, 동정은 미녀를 갈구하는 욕망을 드러낸 것일 따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서사의 권리를 통해 여인들을 제멋대로 묘사했다."고.
본문에서 흥미로운 몇 구절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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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크고 잔가지가 많으면 바람에 시달리고, 미색이 뛰어나면 노리는 이가 많기 마련이다.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 주는 자를 위해 얼굴을 꾸민다. -<사기>
그(석숭)는 관리였으나 또한 강도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예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일부러 화상을 입혀 흉터를 남겼다. -소군촌, 홍안화수에 대한 두려움.
남자들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인을 갈망하며, 그런 미인이 오직 자신에게만 정을 주고, 심지어 자신을 위해 죽기를 바란다. -남성중심의 사고. 남자의 오만과 환상.
일단 한 나라의 군주가 여색에 빠지게 되면 정신을 잃어 대소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어디 군주 뿐이랴)
홍안화수의 재앙은 몰염치하고 추악한 남자에게 있다.
약소국에는 외교가 없다.
증혼 또는 증보혼/ 혈연간에, 같은 부락이나 나라사람끼리 통혼하는 내혼제/ 다른 부락이나 나라와 혼인하는 외혼제.
조세 감면, 형벌 줄이는 등 민생을 위한 조령을 반포했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법이 없었다.
'대식'이란 궁인들이 서로 부부가 되는 것. 여성간의 동성애. '채호'라 하기도.
소설가의 날조된 이야기.
미천한 이가 존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공적도 없이 부귀를 다했다. 이는 도가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음식 남녀(食, 色)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성인들도 인정에 따랐으나 절도가 있었다.
군왕이 평범한 세속 사람들의 감성을 즐길 때 조정의 기강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군왕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위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금세 새어나가기 마련입니다.
고대 성왕께서 배우자를 택하실 때는 언제나 덕을 살피셨지 여색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버림 받았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유약한 남자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망각하고 있다.
서사는 일종의 권력이자 패권이다. 오랜 세월 서사의 주체는 남성.
궁궐에 암투는 반복, 패배자는 동정의 대상, 승자는 득의양양해 오히려 다른 화를 불러 일으켰다.
온정을 끊고 나라의 안위를 살피소서.
미모, 재능, 상대의 뜻을 헤아리는 3박자.-양귀비
안사의 난의 원인: 현종이 소인을 총애하고, 조정을 돌보지 않고, 변방을 소홀히 한 채 실속없이 나라를 이끌어 간 데 있다.
지기를 만나 술을 마시면 천 잔도 적고, 뜻이 안 맞으면 반 마디 말도 많은 법이다.
예로부터 미인은 한 성을 기울이게 하고 한 나라를 기울이게 한다는 말이 있다마는 주인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지 어찌 미인과 관계가 있단 말인가? -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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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지옌화는
옛 문헌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사람 이야기를 모아 현대적으로 해석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문학자. 상하이 출생으로, 푸단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푸단대학교와 미국 오벌린(OBERLIN)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인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에서 출간된 저서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를 배회하며 - 이구범 교수 탐방기(徘徊在現代與後現代之間 - 李歐梵敎授探訪錄)』, 『혁명과 형식 - 모순 초기 소설의 현대성 전개(革命與形式 - 茅盾早期小說的現代性展開)』, 『혁명에서 공화로 - 청말에서 민국시기 문학, 영화, 그리고 문화의 전형(從革命到共和 - 淸末至民國時期文學, 電影與文化的轉型)』, 『작년 여름 뉴욕에서(去年夏天在紐約)』 등이 있다.
저자 리스야는
중국 시문학과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 문학 작품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허난(河南)성 출신으로,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자 심규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문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제주산업정보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육조 삼가 창작론 연구』,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백가쟁명』,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 경전의 이해』, 『중국 사상사 - 도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