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지구가 멸망한다면? 세상이 멸망한다면? 이라는 의문을 떠올려본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멸망할지, 최후의 생물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황량하고 희망을 찾기 힘든 환경일 것이라는 점이다. 소설 <테라리움>은 약 100년 후의 인류가 멸망한 세계를 그려내며 수많은 상상의 파편 중 하나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처음 <테라리움>을 마주했을 때, 온실과 같은 디자인의 표지와, 그와 상반되는 '너희 엄마가 세상을 멸망시킨 사람이야.' 라는 강렬한 띠지의 말이 시선을 끌었다. 그 대조는 책을 흥미롭게 펼쳐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소설의 내용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멸망한 세상, 집을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서는 소년이 겪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지구는 '구세계'라고 표현되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상의 장소들이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만 남고 식물만 무성해진 채로 황량하게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떠올리며 썼다는 작가의 말에 검색을 해봤는데 흔히 말하는 '에코 아포칼립스'가 소설 <테라리움>의 세계와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벙커 안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소년의 세계는 벙커의 일부분, 그리고 어머니가 전부였다. 처음 직접 바깥 세계를 접하게 된 소년은 경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생명체의 존재와 죽음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을 하며 어머니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아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소년이 아파트에 들어가 기록을 들여다보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저자가 세계에 대해 설정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인공기술과 더불어 식량난에 의한 배급제, 전쟁 등... 그러한 환경 아래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들이라고 느껴졌다.
'세상엔 지켜야 할 규칙과 순리가 있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죽고 또 태어나. 고요해 보이는 흙 속에도 수많은 유기체의 삶과 죽음이 있고, 그것을 양분으로 식물이 자라고는 하지. 그 순환보다 중요한 건 없어.' <p. 178~179>
소설은 또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죽음의 화신인 '개의 죽음'과 소년은 여정을 시작하고, '고양이의 죽음'과 같이 다른 죽음의 화신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 화신들은 소설의 전개, 즉 소년이 자신이 어머니의 행방을 쫓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실제 기억을 보여주고, 사물에 빙의해서 소년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하는 등 소설 내에서 판타지스러운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변칙도 존재하긴 하지만 죽음의 화신들은 대체로 순리를 따르고자 하고, 이렇게 소년의 앞에 나타나는 과정에서 소년은 진실에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변화한다.
'이 병은 폐쇄 생태계란다. 이 새우들은 여기서 나갈 수 없고, 빛 외의 것들은 들어오지 않아. 그래도 이것들은 이 안에서 살아남는단다. 새우는 이끼를 갉아 먹고 물을 마시고, 이끼는 새우의 배설물을 먹고 햇빛을 받아 수분과 산소를 만들어내면서, 조화롭고 아름답게 내부의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 (...) 그게 우리가 본받았어야 할 점이지.' <p. 17>
소설 초반에 나오는 이 어머니의 말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지구 안에서 균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섣불리 헨리에타로부터 얻어낸 기술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결말은 달랐을지도 모르니까.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말하길, 소설 속 인류는 끝까지 변화하지 않았기에 멸망했다고 했다. 소설 속 변화를 받아들인 인물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른 형국을 맞이할 수 있었다. 또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년과 대립하는 헨리에타의 모습에서 소설 마지막에는 그 위에 멍청하게 과오를 저지르던 인간의 모습들이 똑같이 덧씌워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 무엇보다 똑똑했지만, 변화하지 못했기에 그 무엇보다 어리석은 존재로 머무르게 되었다.
요새 여러 이상기후가 나타난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소설을 읽자 더 위기감이 들었다. 소설 속의 지구가 과도한 지구온난화 등으로 촉발된 환경 문제에서부터 멸망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한 환경 문제가 식량난을 부르고, 전쟁을 부르고, 파멸을 불러왔다. 현재 우리 인류는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아둔한 짓을 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빚곤 한다. 현실 속 인류가 변화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우리가 실제로 겪게 될 수도 있는 일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 <테라리움>은 이렇게 우리가 앞으로 살아나갈 지구에 대하여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한국형 SF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환경문제로 인해 오염되고 멸망한 세계관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소설 후반부에는 이해를 좀 더 요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다 소화해내고 나면, 삶과 죽음, 균형과 변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지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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