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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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민, 동정, 불행, 소외. 장애인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에는 늘 이런 단어들이 스며들어 있다.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려 노력하는 문학의 세계에서 그들은 동정받는 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지만 존중받아야 할 존재'에 그칠 위험이 크다.

 

<산책을 듣는 시간>은 기존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깨부수는 것을 넘어 장애의 영역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유년시절부터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살았던 수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모어인 자신만의 수화, 진동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까지 수지의 세계에 불완전한 것이란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서 수지의 고요함이 소리의 부재로써의 고요함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영역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엄마의 강력한 의지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자신의 고요한 세계를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수지의 친구 한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색맹을 가진 그 소년은 색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명암을 섬세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게 장애도 남이 갖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이라는 대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된다. 모든 장애인은 장애를 벗고 비장애인이 되고 싶어한다거나 장애를 일종의 결핍으로 생각하는 기존의 인식을 박살내는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소설은 단순히 장애를 비장애와 동급의 영역으로 격상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일반적인 비장애인 주체가 타인, 특히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성숙하는 단계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지 역시 자신의 고요한 세계를 깨고 나아가 소리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래서 인공 와우 수술은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이다. 장애를 벗어나기 위한 용도라서가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계에는 고요한 세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 역시 저마다의 상처와 결핍을 가진 존재들이다. 수지는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이들에게 가 닿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성숙을 이룩함과 동시에 장애가 결핍이 아닌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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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쓸모 있는 인간 -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
김연숙 지음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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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읽을 때는 알지 못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적 구성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물 흘러가듯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토지의 이야기는 너무 낯설기만 했다.

 

나, 참 쓸모있는 인간은 이러한 토지의 구성이 인간의 삶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명쾌하게 집어낸다. 그리고 방대한 토지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인간 한명 한명의 삶을 우리 앞에 드러내놓는다.

 

그러나 이책은 결코 토지 해설서가 아니다. 토지 속 사람들의 삶을 통해 수십년 전 이들의 삶이 현재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작은 위로'인 것이다.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듯한 저자의 친근한 말투가 책장을 순식간에 넘어가게 한다.

 

토지의 방대함이 첫장을 펼치기 두렵게 한다면, 이 책을 통해 토지 속 인물들과 잠시 인사를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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