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루의 불면증 연구소
박은미 글.그림 / 소년한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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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어른을 위한 독특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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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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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거지서(五車之書) 정도의 책이 전부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 목록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하지만 다섯 수레의 책이라니! 적어도 너무 적다. (요즘에도 많은 사람이 다섯 수레의 책도 개인이 소장하기에 넘치는 분량이라 생각하겠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단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평생 다섯 수레의 책만 가질 수 있다면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어떤 책을 버리고 간직할 것인지 고민할 성 싶다.

『장서의 괴로움』에는 보통사람들의 눈엔 괴짜일 뿐인 장서가들이 다수 등장한다.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집이 무너질 위험에 놓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따로 장서고를 마련한 사람도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을 대충 헤아려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삼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책을 대량으로 버린 적이 없으니, 이 책에 소개된 장서가들 앞에선 명함을 못 내밀지라도 어느 정도 책이 있는 편이다.

가장 많은 책은 역시 전공과 관련된 일본문학이나 문학이론서들이고, 뒤를 이어 세계문학, 인문, 만화책들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책은 침대 머리맡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정기구독했던 스크린, 로드쇼, GMV 등의 잡지류는 박스에 차곡차곡 담겨 지하실에 잠들어 있다(나중에 잡지박물관에 기증할 때까지 보관할 셈이다). 다락방에는 아버지의 오래된 책을, 자취를 시작해 집을 떠난 동생의 빈 방에는 다시 찾아 읽지 않을 것 같지만 처분하기엔 아까운 책들을 박스에 담아 두었다.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에도 대략 대여섯 박스의 책이 있는데, 집에는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어 시간이 날 때마다 정리해 동생 집에 보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넘쳐나는 책들을 처분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들이 책을 처분하는 데 주저하게 한다. 우선 내가 가장 분개하는 기억은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던 때, 무료로 나눠주었던 만화책을 받자마자 다시 팔려고 내놨던 사람이다. 친구의 이름을 빌려 그 책을 되사들였을 때 느낀 그 씁쓸한 기분이란. 공짜로 받은 책을 바로 되파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메일을 보냈다. 본인이 누구보다 빨리 댓글을 다는 수고를 들여 얻은 물건이니 어떻게 처분하든 상관 말라는 답장을 받고선 다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책을 주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다음으론 마니아들이 자주 이용하는 일본의 한 헌책방 체인점(북오프)을 찾았을 때 겪은 경험 때문이다. 친구와 둘이서 약 80권 정도의 책을 나눠들고 어려운 걸음을 했지만, 마지막에 내 손에 떨어진 대가는 5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같이 고생한 친구에게 밥과 후식을 대접하니 그마저도 없어졌다. 찢어지거나 구겨지지 말라고 특별히 커버까지 씌워가며 보관했던 책이었는데 표지에 찍힌 자국이 발견될 때마다, 모서리에 구겨진 흔적이 발견될 때마다, 아니면 띠지가 약간 찢어졌다고, 책머리가 빛에 오래 노출되어 변색했다고, 어떤 책은 특별선물을 받기 위해 책 안의 쿠폰을 오렸다고 감정가가 깎였다. 나름 정성들여 보관했던 책인데, 전문가의 눈은 역시나 엄격하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불쾌했던 경험 이후로 헌책방에 책을 파는 일도 극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내 경우는 ‘장서의 괴로움’이 아니라 ‘처분의 괴로움’이 아닐까? 책을 처분할 때마다 이렇게 괴로운 일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처분하지 않으리! 장서의 괴로움보다 처분의 괴로움이 더 크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이후로 웬만하면 한 가지라도 장점을 발견한 책들은 처분하지 않고 손에 쥐게 되었다. 한 가지 장점이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다. 어떤 책은 표지나 본문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책은 표지는 별로지만 번역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나 삽화가의 책이어서, 면지의 무늬가 예뻐서, 내용이 재미있어서 등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아직 통장 잔고가 바닥나거나 얹혀살고 있는 부모님께 한소리 듣지 않고 있으니 나의 장서 라이프는 즐거움뿐이라 단언해도 영 과장은 아닐 테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오래된 책 때문에 즐거웠던 적이 꽤 많다. 고서점 거리로 유명한 일본의 진보초를 돌면서도 못 찾았던 전공 작가의 완벽한 전집을 교토의 한 헌책방에서 찾아냈을 때(책이 담긴 박스에도 흠집이 없었던 데다 박스에 흠집이 나지 말라고 싸놓은 기름종이도 찢어지지 않고, 안에는 무려 당시의 광고지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이제는 절판된 책을 발견하거나 표지가 바뀌기 전의 초판을 구하기라도 하면,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양 가슴이 벅차다.

년 전, 법정 스님이 타계하셨을 때 전국의 헌책방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무소유』를 비롯해 본인이 집필한 모든 책의 판매를 중지한다는 유언이 발표되자, 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뉴스를 접한 후, 혹시나 해서 아버지 책이 보관된 다락에 올라가보니, 『무소유』가 있었다! 그 일로 아버지가 다시 보일 정도였으니 그 감격은 참으로 대단했다. (책의 내용과 반대되는 현실이 부끄럽긴 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나는 복각판을 좋아한다. 구하기 힘든 (그리고 비싼) 고서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복제판을 기획해 출판한 책을 말한다.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모든 책을, 그리고 모든 페이지를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많은 부수를 찍어낼 수도 없었고 당연히 책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웃돈이 붙어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값이 뛴다. 나 같은 서민에겐 복각판은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는 기꺼이 자신의 책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본디 책이라는 매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펴낸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나 역시 책을 사 모으는 데만 집착하는 본말전도의 상황은 항상 경계해야 할 일이다. 평생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쌓아두기만 하다가는 몇 십 년 후엔 지적 허영만 가득찰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접할수록, 많이 가질수록 나름의 식견이나 취향도 생기기 마련이다. 책을 즐기는 방법은 읽는 것뿐만이 아니다. 부디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즐기는 자기만의 방법을 깨칠 수 있기를. 책과 함께하는 문화가 두터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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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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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셋. 몇 년 사이에 큰엄마, 할머니, 작은아빠, 외할아버지께서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해가 거듭될수록 장례식장에서 더 이상 허둥대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죽음에 조금은 익숙해진 듯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한 달 전 갑자기 막내 사촌동생을 잃고 나서, 누군가를 잃는 슬픔에도 경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날이 창창하던 사촌동생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상을 치르는 내내 어린 학생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내용이 계속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작품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넋두리가 자꾸만 작은아버지 내외의 눈물과 겹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주는 이해는 하지만, 공감까지는 할 수 없는 역사였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당사자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가장 억울한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우리가 그들의 슬픔이나 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가 울고 화내봤자 무슨 소용이겠느냐는 회의도 조금은 있었다.

개인의 거리를 중요시하는 나의 별난 성격 탓에 이런 생각을 한지도 모르겠다. 너와 나, 안과 밖 사이에 벽을 두지 않으면 불편했다. 연애를 할 때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올봄에 읽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경험을 잊을 수 없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공선옥, ASIA 32호)에도, 역시 끔찍한 고통과 어마어마한 불행만이 작가를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 법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을 뿐이다. 그때까지 그들의 고통은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책을 읽을 때 역시, ‘우리’를 얘기하는 데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던 적이 많다. 과연 ‘우리’란 게 존재할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인터뷰에서 “산 자가 죽은 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서 이 소설(『소년이 온다』)이 시작된 것 같다는 한강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그제야 죽음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죽은 자는 산 자를 구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자주 보고 겪어 왔으니까. 하지만 작가는 그 반대의 경우,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구원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 소설을 쓴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소설에는 정작 죽은 사람의 이야기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우리는 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가? 다시 읽었을 때, 이 소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작가의 모색이라 여겼다.

사촌동생의 장례식장에서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제발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우리 사이에 놓인 죽음이란 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동안 굳건했던 너와 나 사이의 벽은 착각의 산물이었음을 이제 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큰 고통을 겪은 뒤에야, 사랑하는 너를 잃은 뒤에야 ‘우리’가 존재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렇게 사촌동생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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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 헤는 밤
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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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이 두 가지가 자주 그리고 곰곰이 생각할수록 더더욱 새롭고 큰 존경과 경외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칸트의 말이다. 밤하늘에는 그저 달과 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밤하늘이란 새까만 도화지에는 온갖 이야기가 널려 있어, 칸트의 말처럼 바라볼수록 무한한 생각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하루에 한 번씩 다짐하듯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이.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의 저자 이명현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기다리며 동네 골목길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왜 밤하늘을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그 순간들이 궁금해졌다.

내가 처음으로 밤하늘을 의식한 때는 몇 년 전 퇴근길이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고되고 외로운 하루였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엄청 크고 따뜻한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위로받는 기분이 들면서, 오늘따라 달이 커 보이는 연유가 궁금했다. 당시에는 외로운 내 마음이 달을 끌어당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슈퍼문Super Moon’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밤 이후,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 볼 일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재밋거리 없고, 오로지 별들로 가득했을 고대의 밤은 많은 사람을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미처 설명할 수 없었던 우주의 탄생과 자연의 신비에 관한 답을 하늘에서 찾았다. 밤하늘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많고 많은 이야기를 어디에 풀어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신들이 밤하늘에 별들로 기록해 두었다는 상상은 지금 생각해도 참 로맨틱하다. 고단하고 퍽퍽한 하루하루를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 밤하늘에 관한 감상적인 노래와 시로 치유했던 고대인들의 유전자가 내게도 이어져 내려오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천문학과 과학에서 논하는 밤하늘, 우주도 나를 위로하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는 이렇다. 약 50억 년 뒤 태양이 폭발하면 지구가 종말을 맞을 것이고, 몇 십억 년 뒤에는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 은하와 합쳐질 것이며, 그보다 더 뒤에는 우주 공간이 다시 쪼그라들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결말 말이다. 나의 생각과 감각을 초월하는 우주의 규모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의 고민과 역경이 우주적 관점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조금 황당한 이야기지만 80세까지 장수를 누린다 해도 우주에서 바라보면 찰나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우주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은 일이 일어날 터이다. 캄캄해 보이기만 하는 밤하늘에 실은 무한히 많은 별과 은하가 숨어 있다. 창밖을 내다보며 매일 밤 경험하는 밤하늘은 나에게 다양한 주제의 무수한 생각거리와 감동을 내어준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나는 칸트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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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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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연설이 있는 날 오전 열 시엔 항상 TV 채널을 7번으로 돌렸다. 연설을 중계하지 않는 공중파 채널은 KBS 2TV뿐이잖은가.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대통령 연설을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대통령 연설이란 교장선생님의 훈화처럼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미지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가 한때 대통령 연설문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듣지 않을 글을 써야 하다니, 참 허무하고 불쌍한 직업이구나!’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편집자로서 내 일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저자와 독자는 물론, 디자이너, 서점 MD, 사장님(!) 등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조율해야 한다. (어쩌면 원고를 읽는 행위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 우길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한 내가 단 한 번도 대통령의 연설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동안 (일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짜로 경청해 온 것이 맞는지 반문해 보았다. 어쩌면 겉으로만 귀 기울여 듣는 척 하면서 영혼 없는 맞장구만 쳐 온 것은 아닐까?

두 대통령은 달랐다. 자신의 손목시계에 ‘침묵’이라 새겨 넣은 김대중 대통령과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 의견 듣기를 좋아했다던 노무현 대통령. 경청하는 자세의 모범을 보였다. 국민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최근의 고집불통 두 대통령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반대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도 들어달라고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건 분명 경청의 자세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경청이란 덕목은 나 같은 일개 편집자보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조율해 한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에게 더 필요할 터이다.

책에서는 침묵이나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 동양의 유교 문화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일견 저자의 말도 타당하다. 침묵만으로는 상대방과 소통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경청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자 이제부터 당신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당연히 궁금한 점이 생기고, 반박하거나 칭찬할 점도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수첩에 적어 준 글을 읽지 않고도 나만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언론에서 전(前)대통령은 물론 주요 인사들의 견해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죽자 살자 무조건 큰 소리로 떠들어야 한다. (그래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인기가 높은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돋보여야 살아남는 ‘자기 어필의 시대’를 살면서, 경청의 가치는 많이 훼손되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해서 과연 진실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사람이 많다. 진실한 대화가 부족한, 외로운 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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