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11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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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디플로마티크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1. 〈르완다는 정말 살만한 곳이 되었을까? - 한국 저널리스트가 다녀온 종족 학살 30년 이후의 현장 〉(p.122~127)

  내게 르완다라는 나라는 여전히 낯설다. 중학생 때 우연히 보았던 영화 <호텔 르완다> 속 참혹한 내전만이 머리를 채울 뿐이다. 벨기에 식민 통치가 남긴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열은 온 국가를 찢어놨다. 그럼에도 기사가 전하는 오늘날 르완다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우선 제노사이드 진상 규명과 처벌을 국제사회에 맡기지 않고, 지난한 과정을 스스로 떠맡았다. 마찬가지로 제노사이드를 겪은 시에라리온, 캄보디아, 구 유고슬라비아와 구분된다. 성평등지수(Gender Gap Index)에서도 줄곧 상위권을 차지하고, 2008년부터 비닐봉지를 제조, 사용, 수입, 판매까지 금지했다. 그리고 멸종 위기종인 마운틴고릴라까지 무척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1인당 GDP는 3천달러 대로 여전히 세계 최빈국 수준이지만, 르완다는 카가메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해 장기집권 중이다. 치안과 미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강력한 리더십과 만장일치 수준인 지지율을 보면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떠오른다. 물론 리콴유과 김대중이 벌인 ‘아시아식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떠오를 정도로 이는 명암이 뚜렷하지만, 결국 나라를 부강하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는 건 사실이다. 한국도 군부 독재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다. 물론 당시 한국과 싱가포르, 그리고 르완다가 처한 국제정치 상황이나 현재 지정학적 입지가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르완다가 이런 ‘개발독재’ 모델을 답습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유선 통신을 건너뛰고 빠르게 모바일 환경에 적응한 오늘날 르완다에서, 쿠데타가 만연하고 민주화 운동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 다른 국가의 사례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발독재가 성공적인 발전국가로 이어질 지는 물론 더 지켜봐야겠지만.


2. 〈종이책은 환경위기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 숲이 사라지고 탄소가 늘고 있다〉(p.96~102)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상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 아마 책만큼 품종이 다양한 물건은 찾기 힘들 것이다. 많은 독자에게 선택받고, 꾸준히 읽히는, 이른바 베스트와 스테디셀러를 제외하면 책들 중 절대다수는 결국 출판된 후 폐기될 운명이다. 책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간과하기 힘든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겠다. 심지어 책이 폐기되어 매립, 소각되면 환경에 더 큰 문제다. 그나마 다른 종이로 재활용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재활용에도 비용이 따른다. 즉 출판사 입장에서 책이 팔리지 않으면 생산비 손해만을 감수할 게 아니라 반품과 폐기비용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내연 기관이 전기자동차로 대체되는 것처럼, 종이책 역시 전자책이 보급되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종이책이 주는 질감과 물성, 그리고 감성까지 고려하면 미래에도 완전히 대체되긴 힘들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 역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훨씬 많이 사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워낙에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그리고 출판사-인쇄소-서점이 중심이 되는 출판생태계에서 저마다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다만 책을 사랑하는 독자 입장에서 금세 품절, 절판된 후 결국 폐기되는 책의 수가 어마무시하다는 건 꽤나 서글프다. 펄프 종이가 보다 많이 유통되어 판매 단가도 낮추고, 더욱 친환경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도서 시장이 협소하고 그에 따라 문고본이 나올 수 없는 우리나라에선 무척 요원한 이야기인듯 하다. 거대 펄프 회사들이 과점으로 장악한 시장 역시 큰 문제라는 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3. 〈역사 조작은 어떻게 자행되어 왔는가? - 2차 세계대전에서 근동분쟁까지 조작된 집단기억〉(p.4~10)

  한때 <콜오브듀티(Call of Duty)>라는 게임 시리즈를 무척이나 즐겼다. 제목처럼 전쟁을 다루는 게임인데, 비단 게임을 막론하고 드라마, 영화, 그리고 수많은 도서까지 전쟁은 곧 2차 세계 대전과 동의어였다.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참사에서 우리가 느끼고 새겨야 할 교훈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일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전세가 바뀐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으로 전선이 둘로 나뉘었음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전체 피해 중 절반 이상을 소련이 고스란히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이 극한으로 경쟁하면서 쉬이 잊혔다는 게 기사의 논지다. 당장 2차 대전 발발 전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 독일을 훨씬 우호적으로 대했다. 적어도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보다는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화를 위한 최선이라 여긴 뮌헨 협정으로 전쟁을 억제했다. 비록 1년 짜리 평화였지만 말이다. 물론 당시엔 최선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르나 결과적으로 이는 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푸틴이 현재 대립각을 세우는 서구 국가를 상대로 '역사수정주의'를 비난하는 연설은 생각거리를 무척 많이 던져준다. 역사적 맥락을 망각하고 특정 사건만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러시아나 하마스-팔레스타인 같은, 주류 세력의 적대자를 절대 악으로 바라보기 쉽다. 이는 국제 정치를 바라볼 때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절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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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10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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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디플로마티크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1. 〈'우리'의 검투사 트럼프는 복수를 할 수 있을까?〉(p.10~19)

  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대선에 출마해 당선이 꽤 유력한 건 미국 선거 역사에서도 분명 드문 일이다. 16년 대선에서 승리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트럼프가 다시 돌아올 준비를 마쳤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리고 전 세계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한 번 경험해 보았기에 충격의 강도가 조금 약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트럼프는 기존 미국 정치권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정책을 대담하게 밀어붙였다. 

  선거 유세 기간 동안에 그가 공언한 걸 보면 분명 특이한 정치인이다. 물론 그가 제도권에서 주류 정치인으로 성장한 게 아니라, 평생을 사업가, 협상가로 살아왔기에 그런 면모를 보이는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트럼프는 정치인이 선거 승리를 위해 흔히 쓰는 외연 확장 정책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대신 그는 '집토끼', 그러니까 핵심 지지층을 더욱 충성스럽게 하는 공약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가 처음 정치권에 진입했던 때 트럼프 지지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엄연히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아닌가. 또다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걸고 넘어질 게 뻔하기에 한국인 입장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껄끄러울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워낙에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니, 그가 내세우고 추진할 다른 공약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2. - 〈독일 정치를 뒤흔드는 새로운 '보수 좌파':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무엇을 상징하는가?〉(p.44~50)

- 〈신보수주의 이념의 씨앗을 뿌리는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위험한’ 유럽 청사진〉(p.51~55)

  두 기사를 읽고 나서 기존에 통용되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시리아 내전 이후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이 사회 문제로 성장하면서, 기존에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던 독일 좌파마저 극우 정당 AfD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건 무척 상징적이다. 자라바겐크네히트연합-이성과 정의를 위하여(BSW)는 독일 사민당(SPD)나 녹색당, 그리고 좌파당과 노선을 달리한다. 사회 보장과 경제 분야에서는 진보를,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보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대도시권 고학력자 진보층에 적극 구애하는 기존 좌파 정당과는 달리, 중소기업 노동자로 구성된 중산층과 서민층을 연합한 사회 진영을 구축하려는 게 핵심이다. 

  이런 독일 정당 구조 재개편은 EU 집행위원장 폰 데어 라이언의 구상과는 무척 상극처럼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지는 EU에서 중심 역할을 하던 독일의 상황을 무척이나 크게 바꿀 것이다. 보호주의가 정당화되면 수출 중심이던 독일 산업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러시아를 견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NATO를 강화하고 군수산업을 육성하면 기존 독일의 군사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등이다. 숄츠 총리는 이에 대립각을 세우니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민지가 계속 유입되고, 독일 경제 성장이 정체하며, 인플레이션은 잡을 수 없는 이런 국면이 AfD 같은 정당에게 무척 큰 기회다.      

  

3. 〈강대국 탐욕의 희생양이 된 오세아니아 섬나라들〉(p.71~74)

  NATO가 대서양을 넘어 인도양과 태평양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건 미국의 대 중국 봉쇄 전략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중국을 더욱 압박할 수 있으니 말이다. AUKUS나 파이브 아이즈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큰 일이다. 국제 정치를 공부하다 보면 강대국들의 이권 경쟁과 화합에 중소국이 피를 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건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라서,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은 기후 위기 탓에 영토가 사라질 와중에도 치열하게 셈법을 하여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 냉전 때 비동맹국가들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중 한 쪽을 택해야 했던 압박을 받았듯이 말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보다도 중요한 건 결국 국익이다. 태평양도서국포럼(PIF)는 '푸른 태평양' 전략으로 국제 사회에 자신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알리고 있다. 부디 이 목소리가 강대국의 이익에 잠겨 사라지지 않고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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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 최초의 질문에서 패러다임이 되기까지 굿모닝 굿나잇 (Good morning Good night)
이정동 지음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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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 서포터즈 18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새삼 이 책을 읽고 다윈의 진화론이 얼마나 파급력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마나 많이 설명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큰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 책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술에 관한 책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과학기술학) 혹은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사회))를 다루는 책인데, 얼핏 생물학과 기술은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술 역시 수많은 생물처럼 진화하는 존재이며, 그 과정은 진화론의 주요 논거를 따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복잡하고 왠지 모르게 차가워 보였던 기술이 이 대목에서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두 대상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은 이론적으로 기술을 뒷받침하고, 기술은 인간에게 실용적인 도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그렇기에 엄밀히 구분할 수 있다. 기술은 생물의 일종이라는 설명르로 돌아가보자. 어떤 상황이나 기존 도구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기술은 탄생한다. 여기서 시행착오, 아니 시행학습을 거쳐 다른 기술과 결합하며 기존 단점을 보완한다. 더 나은 기술은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더욱 완전해진다. 변이-선택-전승이라는 진화의 핵심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안그래도 STS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런 명쾌한 책을 만나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의 저자인 이정동 교수는 예전에 KBS 다큐멘터리 <축적의
시간>과 원작 저서에서 접한 적이 있다. 중국이 급부상한 이유를 엄청난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 그리고 세계의 공장을 바탕으로 한 무지막지한 시도가 결합한 결과로 설명해준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최근 화두가 되는 신기술은 단연 AI와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인 칩셋 등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이 과학은 물론 주식, 산업 지형도 같은 전반적인 산업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시적인 시각으로 기술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변화를 가속화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 분야에선 오랫동안 홍성욱 교수가 관련 저술을 집필했는데, 이정동 교수라는 탁월한 저자를 다시 상기시켜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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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 한눈에 보는 서양미술사
유승연 지음 / 하준서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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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보고 싶은 내셔녈 갤러리지만 이 책으로 예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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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크M Critique M 2024 Vol.10 - 영화 평론의 쓸모
성일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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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디플로마티크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지난 8월 주말마다 하루 3시간씩 영화 비평 수업을 들었다. 매주 새로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작성한 후, 다른 수강생들과 서로가 쓴 글을 돌려 읽으며 의논하는 식으로 수업이 이어졌다. 분명 매 주차 같은 영화를 봤어도 각자 다른 지점을 포착하고 자신만의 논지를 전개하는 게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간과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간 장면에 천착하는 경우를 보면 놀랍기도 했다. 글을 쓸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막막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글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또한 남이 나의 글을 그렇게 시간을 내서 첨삭해주는 일이 좀처럼 없기에 무척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배우고 느낀 것이 이번 비평문 모음집을 읽는 데 도움이 됐다.

  영화에도 문해력(literacy)이 필요하다는 서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 예술보다도 자본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이 장르를, 그저 영화관 좌석에 앉아 상영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 보는 것이 곧 그 영화를 이해했다는 걸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사이에는 생각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저 수동적인 수용을 넘어 왜 이런 장면 전환이 있는지, 이런 장면은 중간에 왜 삽입됐는지, 회면비가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지, 카메라는 왜 이 각도에서 이 화면을 보여주는지 같은 것을 곰곰히 따져보는 게 적극적인 영화 감상 태도일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대부분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 감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어떤 영화가 좋거나 싫다고 하는데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어떤 영화가 ’잘‘ 만들었는지, 또는 어떤 영화가 ’잘못’ 만들었는지 곧잘 동의한다. 사람마다 내세우는 근거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기준은 있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비평에 속성이 있다고 본다. 주관적인 감상을 넘어 다른 이들이 납득하도록 객관적인 기준으로 어떤 작품을 평가하는 것, 바로 여기에 비평의 의의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결국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한다면 의미가 퇴색한다. 카프카나 고흐 같은 예술가는 살아 생전에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을 오늘날 같은 반열에 올려둔 데엔 비평의 역할이 무척 컸다.

  비평을 읽다가 스포일러를 마주할 수도 있어서 우선 내가 본 영화들에 관한 글을 먼저 읽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관한 상반된 견해가 눈에 띈다. 영화는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엔딩 시퀀스에서 오늘날 오시비엥침 추모기념관을 연결한다. 이 대목에 관한 평가가 나뉘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곧이어 <퍼펙트 데이즈>가 보여주는 일상의 미묘한 변주, 그 속에 담긴 각종 올드팝의 활용, 코모레비가 의미하는 바 역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줬다. <추락의 해부>에 관한 대담은 내가 들었던 영화의전당 해설 이상으로 영화를 해체해줬다. 스눕과 다니엘 중 어느 존재의 시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산드라의 살인 의혹 여부를 다르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거의 전작을 관람한 크리스티안 페촐트에 관한 개괄도 기억에 남는다. 연이은 3부작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그가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주제와 인물, 그리고 플롯을 가지고 올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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