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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평점 :
*.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모집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멤버로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경찰은 직업이 아니지요. 사명도 절대로 아닙니다. 저주입니다.˝
슬루커는 잠시 후 몸을 돌려 계속 말했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결혼하셨습니까?˝
˝네.˝
˝그러면 잘 알겠군요.˝ - p.195 ]
한 달이나 되는 휴가를 떠나려면 언제부터 준비를 해야할까. 휴가 중 편안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운 기분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찌 되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전작과는 달리 이번 무대는 스웨덴이 아니라 헝가리다.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던 냉전 시기, 헝가리는 소련의 위성국이었다. 나토도, 바르샤바조약기구와도 거리를 두었던 중립국인 스웨덴 기자가 어느 날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휴가 중이었던 마르틴 베크는 외무부 지령을 받아 비밀스럽게 타국에서 수사를 진행한다.
[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는 아파트로 들어서자마자 사람이 변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그랬는데,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초조하게 경계하던 태도가 사라졌고, 대신 몸에 익은 듯 차분하고 기계적이며 단호한 태도가 떠올랐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같은 일을 과거에도 겪어본 사람의 태도였다. - p.324 ]
휴가 중임에도 사건과 엮이는 마르틴 베크를 보고 코난과 김전일이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이게 단순히 실종인지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마르틴 베크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일은 전작처럼 주변을 탐문하고 끊임없이 생각하여 진실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는 일이다. 냉전을 배경으로 하기에 음모론스러운 내용으로 전개되기에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사실을 넘어 진실을 탐구하려는 기자가 실종된 사건이 이념을 두고 갈라진 타국에서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직업 목적은 다르더라도 꽤나 비슷한 과정을 공유하는 탐정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점을 곱씹어보면, 체제 유지, 강화라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은 얼마나 연기처럼 덧없어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이를 그저 흘려보내면 안된다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 무슨 일이나 그런 법이다.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 p.122]
[마르틴 베크는 계속 궁리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경찰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시민이 경찰에게 진 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 p.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