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물이 위험하다 - 과불화화합물을 쫓는 집념의 르포
모로나가 유지 지음, 정나래 옮김 / 산지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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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니 출판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과불화화합물은 화학 전공자나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아니라면 꽤나 생소한 용어다. 책은 비교적 익숙한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 2019)〉이야기로 출발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에다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제작진이 참여했단 소식을 듣고 개봉하자마자 바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화학 기업 듀폰Dupont은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을 그대로 방류했다. 이 오염물질은 과불화옥탄산(Perfluorooctanoic Acid, 이하 PFOA)란 물질인데 프라이팬,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 같은 일상 용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이 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자 가축들은 폐사하고, 사람들은 온갖 중증 질병에 시달리고, 기형아도 태어난다. 20년이나 이어진 지난한 소송 끝에 듀퐁은 패소하고 피해자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상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영화 제목 끝에 붙은 복수형 접미사 -s처럼, 이는 비단 미국에서만, 한 회사가 벌인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PFOA 외에도 과불화옥술폰산(Perfluorooctane Sulfonate, 이하 PFOS)란 물질도 있다. 이 둘은 대표적일 뿐이고 과불화화합물은 수천 종이 넘는다. 따라서 '어디에나 있는 화학물질(Everywhere Chemical)'이자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 있을 뿐더러 쉽게 분해되지 않고 잘 축적되는 특성 탓이다. 이 물질에 자연에 방류되면 토양에 잔류해 지하수까지 오염시킨다. 우리 생활을 아주 윤택하게 해주는 탄소(Carbon) 결합물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이 책은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사히신문》 기자 모로나가 유지가 2018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끈질기게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상하수도 설비가 본격적으로 갖춰진 근대 이후 인류는 마침내 수인성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엔 수돗물은 몇 세기 전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깨끗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부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거나, 조사를 해놓고도 기록을 은폐하거나, 관련 법규를 충분히 보완하지 않은 것도 모두 문제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오염원이 결국 미군 기지였다는 점이다. 미군은 포소화약제 사용을 인정했으나 조사에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다. 가데나 기지 인근을 비롯해 미군 기지가 곳곳에 자리 잡은 오키나와 현에서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일미군지위협정도, 미일합동위원회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미군 기지는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많이 있다.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로 기지가 일원화되면서 부지 반환이 잇따르는 추세다. 필자 역시 『냉전의 벽』이란 책 저자로 참여해 서울 용산과 부산 서면에 위치했던 구 미군 기지 내 심각한 토지 오염을 지적한 졸고를 쓴 바 있다. 캠프 히야리아가 오래 전에 반환되었음에도 부산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토지 정화 작업이 그만큼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면적도, 주둔 병력도 훨씬 컸던 용산 기지는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책임 주체인 미군과 정부, 그리고 일부 기업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그나마 희망을 찾자면 최근 이상 기후 등으로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이 가파르게 늘면서, 세계 각국에서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규제하려는 점이다. 물 한 모금 마음 편히 마실 깨끗할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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