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 때문에
나태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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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시는 가장 오래된 문학 분야지만 오늘날 문학을 지탱하는 건 소설인 게 사실이다. 창비,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문학동네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시집을 출간하고 있지만, 시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최대한 여러 분야를 편식없이 독서하려고 하지만 당장 나조차도 오롯이 시집을 완독해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이 시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다. 이 책은〈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가 쓴 산문집이다. 평생을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해온 시인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글을 썼는지, 독자들에게 무슨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계속 생각해보며 읽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삶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준다. 비록 부족하고 실패할지라도 다시금 시도하고 이어갈 여지를 남긴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보는 내 모습. 내가 평가하는 내 삶. 외부 풍경이 아니라 내부 풍경.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 p.26 좋아한다는 것]



  이 책 제목은 내가 몇 번이고 읽었던 만화 『슬램덩크』 속 명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농구와는 전혀 접점도 없던 양아치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했던 건 첫 눈에 반한 채소연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키가 유달리 컸던 백호에게 소연이 건냈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 백호는 그저 소연에게 호감을 살 목적으로 "네,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뻔뻔스레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작중 마지막 대회에서 백호는 경기 중에 아주 큰 부상을 입는다. 꿈만 같았던 지난 몇 달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백호를 농구로 이끌었던 한 마디가 떠오른다. "농구, 좋아하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좋아하다'라는 단어엔 이렇게 마법 같은 힘이 담겨 있다. 사람이 무언가에 빠진다면,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면 거기엔 많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다른 부차적인 이유는 필요 없어진다.


  어느덧 80대에 접어든 시인이 50년이 넘도록 꾸준히 시를 써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건 간에 꾸준히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여전히 자기 일에 애정을 보여주는 나태주 시인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일축하며 자아 비판했지만, 이 책에 실린 여러 글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목표를 차근차근 실천하며 살아가자는 부분이었다. 언젠가 접한 미국 해군 제독 맥레이븐이 한 강연과 책 "침대부터 정리하라"는 충고와 상통해서 더 내 마음을 울리기도 했나 싶다. 대표작 〈풀꽃〉처럼 나태주 시인은 쉽고 친근한 시어로 시를 쓰는 걸로 유명하다. 나'와 인연과 세상과 글을 좋아한 시인이 평생 동안 시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나 또한 나 자신과 내 주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겠단 다짐을 해본다.   



[오늘에 와 나는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조그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분명히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일생을 바쳐 그 꿈을 이뤄내라고. 그것이 그대들의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다.

소년이여 큰 꿈을 가져라. 이것은 분명 옛날식 충고요 허황한 교훈이다. 그 대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소년이여 조그만 꿈을 가져라. 꿈을 가지되 실현 가능성이 분명하고 목표가 확실한 꿈을 가져라. 끝내 그 꿈을 이뤄라. 이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내 인생을 걸고 하는 말이다. - p.66~67 소년이여 조그만 꿈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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