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티크M Critique M 2023 Vol.7 - 몸몸몸, 자본주의의 오래된 신화
김정은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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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책을 보면 묄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이란 게 나온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선사 시대의 오브제라 지금 우리가 이 물건을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다. 다만 이 비너스상은 실제 인간을 모델로 삼은 게 아니라 당시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총체화한 것이라 여기는 의견이 많다. 커다랗고 늘어진 유방, 매우 굵은 허리, 불룩 튀어나온 배, 강조된 엉덩이를 보면 옛날 인류가 여긴 미의 기준은 오늘날과 많이 다르구나란 걸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이 석상이 미의 기준이 아니라 생식, 출산, 다산의 상징으로 주술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학설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석상은 시대에 따라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그 자체로 결정적인 증거인 셈이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즉 SNS처럼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미디어는 일종의 양날의 검과 같다. 우리는 타인을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쉬워졌지만 반대로 남이 우리를 엿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이 다짐과 결심을 한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운동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넘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운동 성과가 한해 목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과시욕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예컨대 1년 동안 열심히 식단을 지키고 운동 루틴을 수행해서 누가 보더라도 깜짝 놀랄만한 탄탄한 몸을 만들어 바디 프로필을 찍고 싶을 수 있다. 워낙에 힘든 일이기에 사진에 찍히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목표 달성을 위한 자극과 동기 부여로 삼는다면 원하던 바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바디 프로필이 유행을 넘어 열풍, 광풍이 되어 버린 건 결국 우리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TV를 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유튜브와 인스타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들이 즐비하다. 방송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일반인 인플루언서도 있다. 이런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우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목표를 성취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계속 자기를 채찍질하며, 끝모를 자기 착취에 시달리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코르셋이나 전족처럼 특정 시대와 국가에 성행하던 악습이 있었다. 이런 도구는 여성을 신체적으로 억압해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코르셋과 전족을 사용했던 여성의 신체는 관음당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코르셋과 전족 같은 도구가 없어도 더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억압이 돌아가는 사회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비교, 열등감, 자기 착취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덧)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 <더 웨일>과 <플라워 킬링 문>에 관한 글이 나온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수가 소수의 몸을, 아니 존재를 어떻게 억압해왔는지 잘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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