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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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쟁이 (A Cartomante)」

 ["먼저 당신이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를 보게 될 겁니다. 당신은 지금 무척 두려워하고 있군요." (p.20)"]

  카밀라는 절친한 친구 비렐라의 아내 히타와 불륜 관계다. 카밀라에게는 오랜 우정보다 한순간 불타오른 사랑이, 히타에게도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사랑을 넘어 떳떳치 못한 진짜 사랑이 더욱 소중했다. 하지만 친구와 남편을 속이고 몰래 하는 사랑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사랑 앞에 덜컥 겁이 난 두 사람은 점을 통해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을 그려본다. 불안해진 감정을 점에 의탁해 진정시켜 보려는 시도일까? 그런다고 해서 욕망이 이성을 이길 수 있을까?


2.「회초리 (O caso da vara)」

  [다미앙의 영혼도 밤이 되기 전에 또다시 침울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매 순간 그는 창살을 통해 밖을 살펴보았지만 그때마다 풀이 죽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p.35)"]

  신학교에 다니던 다미앙은 이런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 불같은 아버지가 반대할 게 뻔하지만 다미앙은 어떻게든 신학교를 벗어나고 싶다. 그는 히타라는 여성의 지위를 이용해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허나 생각대로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진 않는다. 루크레시아라는 어린 하녀가 주인인 시냐 히타에게서 매를 맞는다. 하지만 루크레시아는 별 잘못도 하지 않았고, 다미앙이 나선다면 해결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놓인 처지와 마음 속 양심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3.「자정 미사 (Missa do Galo)」

["벌써 시간이 됐나 보죠?" 내가 물었다.

"물론이죠."

"자정 미사 갑시다!" 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반복해 들렸다. 

"가세요, 어서 가세요.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내 잘못이네요. 다녀와요. 내일 만나요. (p.51)"]

  '나'는 공증인 메네지스 씨네 집에서 신세를 진다. '나'의 사촌과 첫 결혼을 했던 메네지스는 재혼을 해 콘세이상 부인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헤어진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외박을 해서 공공연하게 사랑을 나누고 오는 메네지스지만, 콘세이상 부인은 알고도 모른 척 한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콘세이상 부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키워간다. 자정 미사에 참석하기로 약속했지만 사랑하는 콘세이상 부인과 늦은 밤에 나누는 은밀한 대화 때문에 미사는 뒷전이 되어 버린다.


4.「유명인 (Um Homem Célebre)」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거부도 없이 그의 손가락은 음표를 뽑아내고, 그것을 흔들어 서로 연결했다. 마치 음악의 신 뮤즈가 곡을 만들고 때맞춰 춤을 추는 것과 같았다. (p.60)]

  야회에서 자신이 작곡한 폴카 곡을 연주해달라고 부탁받은 페스타나. 어쩔 수 없이 연주하는 자신이 마뜩치 않는다. 그러다가 집에서 마치 신들린 것 같은 연주를 이어나가고 도취에 빠져 그는 새 폴카 곡들을 완성한다. 카드리유나 폴카 같이 유럽에서 인기 있는 곡을 작곡한 브라질 음악가. 그는 충분히 인정받을까? 예술가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정 욕구가 창작열을 넘어버리면 예술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5.「정신과 의사 (O Alienista)」

  ["문제는 과학적이란 겁니다. 과학은 새로운 이론을 다루는 것이고, 그 첫 번째 사례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이론과 실천을 내 안에서 결합하고자 합니다." (p.156)]

  이 책의 표제작이자 앞선 단편 4개보다 분량도 긴 중편 소설.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총 13장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가 이타구아이시에 정신병원을 건립하며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다. 의사인 바카마르치는 정신병원을 이성과 광기를 구분하는 공간이라 여긴다. 모든 연구와 판단은 과학에 근거한다. 근대가 중세를, 문명이 야만을, 합리성이 비합리성을, 과학이 종교를 집어삼키고 대체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작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기준은 과학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이 되어 버린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가다가 결국 박사를 향한 존경심이 모든 걸 덮는다. 

  소설에서는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바스티유 감옥'이 언급되지만, 벤담과 푸코가 주장한 판옵티콘이 머리에 그려진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이른바 '근대성의 규율' 그리고 그 속에서 저항했다가 꺾인 이타구아이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지. 바카마르치 박사는 이성과 광기, 합리성과 비합리성, 과학과 맹신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결국 동전의 양면임을 일깨워 주는 인물이자 작가이자 결국 우리 독자 자신 같기도 하다.



*. 빛소굴 출판사에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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