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킴의 영화로 들여다보는 역사 -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썬킴 지음 / 시공아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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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전까지는 영화관에 가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았던 이유는 영화에 별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는 집 근처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매일 빌려 읽었다. 그렇지만 거기서 영화 DVD를 빌려본 건 가뭄에 콩 나는 정도였다. 아마 어렸던 내게 2-3시간을 온전히 영화 한 편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나 보다. 영화와 담을 쌓다시피 살던 내가 영화관을 기웃거리고 영화를 챙겨보던 때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군 생활 시절이었다. 군대의 시간은 바깥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휴일마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군 부대 안에 영화관이 있었고, DVD나 블루레이를 대여해주는 도서관도 있었다. 부대 바로 옆에는 CGV도 있었고, 군인 할인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본 거였지만 영화에서 재미를 찾은 건 아마 그 때였을 것이다. 


  전역을 하고 더 이상 군인 할인을 받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학교 앞에 있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에는 대학생 할인이 있었다. 덕분에 기대작이 개봉하면 곧잘 영화관으로 가 즐겁게 관람을 했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관에 자주 갔던 건 다름 아닌 코로나 이후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영화관엔 사람들이 좀처럼 가지 않았고, 영화도 줄줄이 개봉을 미뤘다. 이런 상황에서 멀티플렉스에선 오래된 명작을 다시 상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고 책이든 영화든 검증되고 확실한 작품을 선호하는 내겐 정말 잘된 일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 10편 중에서 <중경삼림(7장)>, <늑대와 춤을(9장)>, 그리고 <킹덤 오브 헤븐(10장)> 3편은 영화관에서 재개봉할 때 본 것이었다. 이 외에 내가 본 작품은 <명량(2장)>과 <광해(6장)>이었다. 우연의 일치지만 본 것과 보지 않은 것이 정확히 반반이다.


  썬킴이라는 저자의 이름은 베스트셀러와 팟캐스트에서 자주 확인했지만 책을 읽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분이 영화를 전공한 줄은 몰랐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서 기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내용도 중요하다. 즉 무슨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할 것인가는 언제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일단 영화는 창작물이기에 인물과 배경을 완전 허구로 창작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그 밑에 켜켜이 쌓여 올라간 역사에는 영화로 만들기 좋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와 사건이 참 많다. 많은 영화가 역사적인 소재를 택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창작물이라 실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측면인 재미를 간과할 순 없는 탓이다. 실화를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면 그건 다큐지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역사 영화를 볼 때는 영화 내용과 실제 역사를 똑같이 여기면 곤란하다. 이 책의 목표는 저자가 선정한 명작 영화 10편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알려주고, 실제 역사와 영화 줄거리가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전공보다 오히려 교양 수업을 강의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여러 교수님에게서 들었다. 관련 지식이 없는 입문자에겐 그만큼 더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친절한 교양수업 같은 책이었다. 내가 이미 본 영화에 대한 설명도 충실했고, 특히 <중경삼림>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에 반환될 홍콩의 역사와 등치시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연관지은 설명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광해>에서 광해군의 업적인 중립 외교와 대비되는 실정인 무리한 옥사와 숙청, 그리고 토목 공사로 전쟁 때 쌓은 민심을 잃었다는 것과 아버지 선조로 인한 불안한 지위를 언급해준 것도 좋았다. 다만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명량>에서 전쟁 발발 전 조선이 전쟁 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내가 읽었던 학술서와는 다른 내용이라 검증이 필요해 보였다. 성벽을 축성, 보강하고 병력을 모집, 재편성하는 등 조선은 나름대로 준비를 충실히 했다. 하지만 내전을 막 끝낸 일본이 설마 그런 대규모 병력으로 전면전을 벌이는 상식 밖의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김성일이 의병장으로 활약했다는 디테일을 언급해준 건 좋았다. 


  그 밖에 진시황 암살을 소재로 한 <영웅: 천하의 시작(1장)>과 프랑스 위그노 전쟁에 관한 <여왕 마고(3장)>, 체 게바라의 일생을 다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4장)>, 천황에 반대했던 최후의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를 다룬 <라스트 사무라이(5장)>, 1789년 프랑스 대혁명부터 나폴레옹 전쟁, 그리고 영화 배경인 1830년 7월 혁명까지 쉽게 설명해준 <레 미제라블(8장)>도 만족스러웠다. 가장 흥미가 갔던 건 전기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라스트 사무라이>였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체 게바라는 역사적 영향력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인지도만큼 행적이 그닥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책의 설명이 많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역사를 사랑하는 영화 전공자로서 썬 킴 작가님이 앞으로도 이 책과 같은 작업을 꾸준히 해주시길 바란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다음 책은 제1,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뤄주시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본다.



*. 시공아트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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