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역사 - 연기 신호에서 SNS까지, 오늘까지의 매체와 그 미래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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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를 쭉 학교에서만 보내다 보니 학내에 변화가 있으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몇 년 전 일이다. '신문방송학과'라는 전공 명칭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변경된 일이 있었다. 과 명칭은 주로 약칭으로 부르기에 '신방과'나 '미컴과'나 내겐 매한가지였다. 글자 수가 다르진 않기 때문이다. 해당 전공생이 아닌 내겐 어찌 되든 별 상관없었다. 별 상관도 없던 일이 불현듯 내 머리 속을 스친 건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이 제목 그대로 "미디어의 역사"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미디어'란 단어를 한국어로 옮기면 '매체'란 표현이 가장 적확할 듯 싶다. 앞서 말한 신문과 방송은 전체 매체 중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모든 매체를 대변하진 못한다. 더군다나 시간이 갈수록 전체 미디어에서 신문과 방송은 점점 덜 중요해지고 있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미디어가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발달했으며, 종류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처음에는 소리, 냄새, 몸짓으로 소통했다. 그러다가 쐐기문자, 점토판, 파피루스, 종이 같은 수단이 개발되고 인간을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됐다(1장). 하지만 다른 공간으로 기록을 전달하려면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1세기부터 14세기는 곧 "전령들의 시대"였다(2장). 곧이어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촉발된 인쇄 혁명이 기록과 매체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3장). 이로 말미암아 현대적 글쓰기가 17세기 들어 비로소 시작했으며(4장), 이후 표현의 자유,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처럼 오늘날 익숙한 개념들이 본격적으로 부상했다(5장).


  세계사에서 가장 큰 변곡점 중 하나로 프랑스 대혁명을 꼽을 수 있다. 혁명이 프랑스 일부에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로 퍼지고,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른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친 데에는 분명 언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6장). 언론은 19세기 들어서 급성장했다. 본디 특권층만이 전유할 수 있었던 정보는 언론이라는 통로 덕분에 각계각층으로 전파됐다(7장). 세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도 언론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다(8장). 글은 오랫동안 언론이 사용한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전화, 사진, 라디오 같은 신 매체가 본격적으로 언론에도 사용된 것은 20세기 초중반부터였다. 이렇게 언론은 한층 더 진화했다(9장).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이 골고루 경쟁하며 20세기는 언론의 황금시대가 되었다(10장).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지속할 것만 같았던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이라는 세 매체는 21세기 들어 큰 위기를 겪을 조짐을 보였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전통적 매체는 인터넷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점차 쇠락했다(11장).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전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연결해주는 인터넷. 이 덕분에 우리는 정보 과잉의 시대를 맞이했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특정 계층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서 문제였다. 그러자 문제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문제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고, 그 중에서 '진짜' 정보를 감지해내는 일마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12장).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13장에서 저자 자크 아탈리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잘 드러난다. 아탈리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에 근거한다. 우리가 정보를 적절히 통제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능력이 그냥 막 주어지는 것은 당연히 절대 아니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진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합의'를 통해 우리가 도출해내는 거라 인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 의견, 믿음을 분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저널리스트라는 전문 직업군이 있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기에 저널리스트에게만 모든 문제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저널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언제든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BATX(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같은 초국적 기업들이 지나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 지식인이 쓴 글이기에 유럽 역사가 중심이 되긴 한다. 특히 프랑스 언론들이 예시로 많이 등장하는데 <르몽드>나 <르피가로> 정도밖에 모르는 내겐 낯선 언론이 많았다. 그러나 워낙 여러 분야에서 대중교양서를 집필한 저자의 내공 덕분에 방대한 미디어의 역사를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은 주로 과거의 일을 다룬다. 그렇지만 비단 과거를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우리가 마주할 미래를 '미디어'라는 주제로 한꺼번에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책에 관심이 생긴 분들께 현재와 미래와 밀접히 연관된 11~13장은 꼭 읽으시라 권하고 싶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대표작 『1984』에서 남긴 말이다.



*. 책과함께 출판사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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