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링, 칭링, 메이링 - 20세기 중국의 심장에 있었던 세 자매
장융 지음, 이옥지 옮김 / 까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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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어느 시대에든 툭 튀어나온 송곳같은 인물들이 있는 법이다. 오랫동안 통일 왕조를 유지하던 중국 역사에서 많은 나라들이 사분오열되어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20세기의 중국은 ‘혼란’스럽다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운 형국이었다. 한때 최강대국이었으나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청 왕조의 봉건 질서는 신해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황제는 이제 없다. 백성이, 아니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공화국에는 더이상 혼란이 없었을까?



    아니다. 좋든 싫든 간에 황제라는 최고 권력은 어쨌든 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구심점이 사라진 중국에서는 온갖 군벌들이 난립해 새로운 ‘황제’를 자처하며 서로 경쟁했고, 사회주의라는 새러운 이념이 유입되면서 군벌이 정리된 자리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격렬했고, 일본이라는 아시아 제국주의 세력에 침략에 맞써 국공합작이 있었고, 일제의 패망 이후에는 중국은 다시 내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중국 본토를 통일했고 장제스의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패퇴해 국부천도를 단행했다. 



    중국 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이라는 세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세 인물을 다룬다.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라는 쑹씨 세 자매의 이야기다. “한 명은 돈을 사랑했고, 다른 한 명은 권력을 사랑했으며, 또다른 한 명은 국가를 사랑했다.”라는 문구가 말해주듯 첫째 아이링은 장제스에게 정책을 조언해주던 최측근이자 당시 중국 최고의 부호 중 하나였으며, 둘째 칭링은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의 존경을 받은 중국의 ‘국부’ 쑨원의 아내이자 나중엔 부주석까지 올랐던 마오쩌둥의 최측근이었으며, 셋째 메이링은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의 아내로 말년까지 정치에 관여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중국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기도 했다. 전족으로 대표되는 악습애서 알 수 있듯 여성에게 주어진 기회는 없었다. 이런 나라에서 누구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세 자매가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쑹씨 집안의 재력으로 딸들이 모두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경험해 새로운 가치관에 눈뜰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여성 서사를 담은 동시에 이념의 차이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자매들의 시선과 행적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단순히 여성 서사와 다채로운 시점의 도입으로만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책의 초반부에 집중되어있는 ‘국부’ 쑨원의 진면모다. 엄청난 위상 뒤에 있던 쑨원이라는 인물의 권력욕과 야심을 알고 나서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하나의 시선으로 고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뤄져야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공산 통일 이후의 역사는 대부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정책이라는 종화인민공화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책은 국부천대 이후 장제스와 아들 장징궈에 집중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중화민국으로 조명을 옮긴다. 



    이번 학기 <중국외교정책>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중국과 관련된 자료를 두루 접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에 무지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느 나라든 현대사는 복잡하다지만 아이링, 칭링, 메이링 세 자매의 일생을 나침반 삼아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중국을 전보다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학기는 이제 절반쯤을 지난지라 여전히 내가 배우고 공부해야할 내용은 산더미같지만 다른 역사책들과 논문과 함께 이 책을 필요할 때마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 까치글방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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