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딸 : 뒤바뀐 운명 1
경요 지음, 이혜라 옮김 / 홍(도서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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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유치원생 때였던 거 같다. 그때 내가 살던 지역에선 경인방송 iTV가 1번으로 나오고 있었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막 돌리다가 펑소에 볼 일 없는 경인방송에 멈췄던 건 생소한 옷을 입은 예쁜 언니들 때문이었다.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뭐라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이윽고 엄마와 나는 그 드라마의 애청자가 되어있었고 그게 황제의 딸에 대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워낙 어릴 때 봐서 어떤 스토리였는지, 책을 읽기 전까지 가물가물했다. 생생히 기억나는 건 주인공 제비와 자미가 정말 예뻤다는 것과, 가운데 큰 꽃이 있는 머리장식의 신기한 생김새였다.


20년이 넘게 지나고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 한국어판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어린 시절 뭔지도 모르고 봤던 드라마가 지금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도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고 이내 빠져들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제비에게 진심으로 놀라운 감정을 느꼈다. 어릴 적 기억으로 제비가 발랄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산달까. 절대 권력을 누리는 황제 앞에서도 제비의 거침없는 성격은 변하지 않았고, 서슬 퍼렇게 무서운 황후 앞에서 제비가 동네 앙숙 대하듯이 하는 장면에서는 둘리가 고길동을 골탕먹이는 장면이 오버랩될 정도였다. (물론 황후는 고길동과 달리 악의를 갖고 행동하는 인물이고 본질적으로 다른 캐릭터이다.) 제비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조심성 없는 언행을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황족이든 노비든 모두를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누구 앞에서든 자기 속내를 투명하게 비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제비를 아끼고 사랑하는 게 이해되기도 했다.




그 외 다양한 인물들이 입체적인 성격을 갖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자미가 유약한 듯 보이지만, 제비와는 또다른 결의 용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길거리 공연에서 가짜 사연을 듣고 노잣돈을 보태는 장면에서 자미는 그냥 순진한 온실 속 화초 같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비를 감싸고 비밀을 짊어지는 등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용기를 보일 때 그녀는 영웅 그 자체였다. 또한 황후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종종 자신의 외로움을 내비칠 때 누구보다 여린 사람으로 보였다. 그럴 때마다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이태는 내가 제일 좋아하게 된 남자캐릭터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심 '제비와 이태가 이어져도 참 괜찮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태는 오황자 영기처럼 제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아껴주었고, 제비를 연모하면서도 그 감정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제비가 감정적인 행동을 해도 책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라가서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에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의 표지를 봤을 때 누가 제비고 자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다시 보니까 표지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젠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책의 표지를 보면 오른쪽에 있는 자미는 조심스럽고 다소곳한 표정으로 정면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다. 반면 환주공주가 된 제비는 청나라 공주의 옷차림을 하고 약간 더 동글동글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호기심 어린 모습이 느껴진다. 둘의 모습이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였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내내 한국어 번역에 세심한 신경이 들여진 것 같다고 느꼈다. 제비가 사투리를 흉내내는 장면이나, 시의 구절을 비슷한 중국어 발음으로 착각해서 듣는 장면에서 이걸 한국어로 바꾸는 게 어려운 작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국판에도 그 느낌이 잘 번역되어 전해진 것 같았다.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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