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미소시루 - 떠난 그녀와 남겨진 남자 그리고 다섯 살 하나
야스타케 싱고.치에.하나 지음, 최윤영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일본 미식영화를 좋아한다. 블로그에 언급했던 일본 영화도 모두 미식영화였다. 담백함과 절제미 그리고 소박함이 좋아 다운로드 받아두고 두고두고 본다. ‘하나와 미소시루’도 사실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 영화 포스터가 미식 영화일 것 같아서 기다렸던 영화다. 한 상 아기자기하게 차려져 있는 이미지를 보고 소박한 미식영화구나 했다. 거기다 ‘감동 실화 베스트셀러 영화화한’이란 포스터 문구에서 더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실화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원작을 찾아봤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미식영화라면, 원작을 미리보고 예습은 좀 해줘야지 하고.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은 책을 읽음과 동시에 사라졌다.

단순히 미식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미식 영화의 원작이란 생각에 이 도서에 흥미를 느낀 나는 치에와 야스 그리고 하나 가족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삶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준 책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물론 책을 읽고 눈물을 핑 돌게한 책은 있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였다. 지하철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눈물만 핑 돌고 잘 넘어갔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내내 나를 놀라게 하더니 후반부에서는 나를 시종일관 울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치에’와 ‘야스’가 어떻게 만났고, 항암제로 인해 포기하고 있었지만, ‘임신’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하나를 낳고 등 유방암을 제거하고 다시 폐암으로 재발하고 온몸으로 암이 퍼지는 과정을 여기에서 다 이야기하며 스토리를 적어 내려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와 미소시루’에서 그 부분에 감동을 받고, 감화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도서의 가족에게 주목했던 것은 자연이 주는 음식과 환경으로 암을 이겨내려고 하는 자세와 강인한 인생관 그리고 교육관이다.

1. 먹는 것이 살아가는 것

사람의 정상체온은 ‘36.5’도라고 한다. ‘1도’의 차이로 면역력을 좌우하고, 건강한 삶을 좌우한다. 평소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가졌던 치에와 야스에게 블랙잭이라는 의사가 권한것이 ‘미소시루와 현미중심의 일식’이다. 즉 암에 걸리면 보통 항암치료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항암제에만 의존할 경우 나중에는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가 없어져버릴 거라는 것. 즉 인위적으로 나쁜 부분을 수술로 자르거나 염증을 약에만 의존하는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블랙잭은 올바른 식사와 마음가짐으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병에 걸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생활방식이 원인이에요.”

“당신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은 먹는 일입니다. 살이 빠지면 안 됩니다. 오히려 조금 찌우는 것이 좋아요. 살이 찌면서 죽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녁 10시에 자서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올바른 생활습관.
그리고 아침에는 미소시루와 현미밥, 미소시루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국물 맛을 내고, 우엉이나 당근, 토란 등의 뿌리채소를 듬뿍 넣기. 뿌리채소는 몸을 안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준다. 주요리는 산리쿠오키산 정어리 소금구이. 곁들인 반찬은 낫토와 누카즈케

누카즈케는 쌀겨에 소금과 물을 뒤섞어 일주일간 발효시킨 겨된장에 채소를 박아 절인 음식 (달팽이 식당이란 영화에서 이런 음식을 본 것도 같다)

즉석식품을 생활화했던 치에와 야스는 올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지향하며 생활하고 있었고, 이를 하나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제철 식품을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식생활법을 말하는 ‘마크로비오틱’ 식이요법을 몸소 실천하는 생활을 8년간 해왔다. 덕분에 딸인 하나도 나쁜 음식과 좋은 음식을 가려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간식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는 좋은 습관이 생길 수 있었다.

엄마 옆에서 아침부터 칡을 넣은 매실차를 마시고 현미밥을 먹고 효소를 마시는 아이.
매실장아찌와 단무지를 좋아하고 간식으로 볶은 콩과 정어리 꼬치구이를 덥석 베어 무는 아이.
“저녁 반찬 뭐 먹고 싶어?” 라고 물으면, “현미 오니기리랑 낫토랑 미소시루”라고 대답하는 세 살짜리 아이는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 없을 것입니다.

2. 교육관

하나뿐인 딸 하나에게는 물질보다는 마음속 풍요로움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 과소비하지 않고 편리한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는 생활, 그리고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몸에 익히도록 했다.

치에는 육아일을 즐겼다.
‘아이가 해주길 바라는 일들을 직접 해 보인다.’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나 자신이 하지 않는다.’ 이것이 치에의 육아 원칙이었다.
이때 네 살이던 하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웃는 얼굴’과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감동하고 감탄했던 부분>

다섯 살이 됐기 때문에 그저께부터 아침밥 준비는 딸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물론 옆에서 도와줍니다.)
칼 사용하는 걸 보고 있으면 꽤 무섭습니다만........
말하고 싶고, 손 내밀고 싶은 것을 꾹 참습니다.
“하나야, 칼을 쥐지 않은 반대 손은 고양이 손과 같다고 생각하렴. 손가락을 펴고 있으면 위험해요.”
“오늘은 쌀 씻는 것을 해 볼까. 조심스럽게! 쌀 한 톨에는 7명의 신이 있단다.”
치에는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하나에게 칼을 쥐였다. 하나는 그 작은 손바닥에 두부를 올려놓고 칼을 내렸다. 손바닥에 칼날이 닿는 감각을 알게 하는 것. 그리고 칼날을 끌어당길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린이집 니시 원장님에게 들었다.
발판 위에 올라가 도마 위에 채소를 올려놓고 자르고, 강판에 무와 생강을 갈았다.
조금 익숙해지자 불도 사용하게 했다. 치에는 미소시루를 끓일 때 불을 끈 상태에서 미소를 넣을 것, 그리고 채소의 껍질이나 뿌리를 모두 사용하는 것의 의미를 가르쳤다.
“엄마, 미소는 얼만큼 넣어야 돼?”
“하나가 스스로 간을 보렴.”
말을 하지 않는다. 손을 빌려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가능한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경험하게 하고, 끝맺도록 하는 거예요.” 언제나 치에는 이렇게 말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부모에게는 꽤나 어려운 주문이다.
치에는 엄격했지만 하나의 방법이 잘못되었더라도 절대로 나무라지 않았다. 혼내지 않고 몇 번이고 반복하게 했다. 조리에 실패했을 때에는 그 이유를 함께 생각했다.
하나가 음식을 가려 먹고 밥을 남기면, 치에는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라고 혼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어도 돼. 대신 남긴 음식은 내일 아침에 하나가 전부 먹는 거야.”
‘배를 곯리다.’ ‘배가 고파질 때까지 밖에서 놀게 하다.’ 이것이 치에만의 ‘조미료’였다.


다소 늦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주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바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하나가 혹 방법을 잘 못했더라도 화를 내는 대신 실패한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부모 교육 방식이었다. 나는 교육정보에 빠삭한 강남엄마들의 교육방식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거의 없었는데, 치에의 교육방식이 존경스럽고 대단해 보였고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빠랑 엄마가 쭈글쭈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되어서 오줌 싸면 하나가 기저귀를 갈아 주고 엉덩이를 씻겨 줘야 하는 거지?”

그 덕분에 하나는 부모가 깜짝 놀랄 만큼 속이 깊은 아이로 자라났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치에는 하나에게 ‘자립’을 가르쳤고, 하나는 치에에게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은 것 같다.


3. 강인한 인생관

한창 예쁠 나이 ‘25세’, 그리고 곧 결혼을 하게 되는 여성. 그녀에게 유방암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항암치료를 받게 될 경우 임신이 안 될 수 있다. 그리고 급기야 유방암을 제거하기 위해 가슴한 쪽을 도려낸다. 항암제로 인해 탈모는 당연하고.

그런데 마음을 바꿔먹고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치에와 야스에게 축복 아닌 축복이 생겼다. 바로 배속에 하나가 생긴 것. 하나를 출산한다면, 정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임신에 마냥 기뻐도 할 수 없지만, ‘죽을 각오로 낳아라’라고 말하는 친정아버지의 한마디에 낳기로 결심한다. 물론 남편인 야스가 바랐던 것도 있지만, 친정아버지의 저 한 마디에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치에의 망설임이 이해가 갔다. 물론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에 100% 이해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두려움과 고뇌 그리고 외로움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를 낳고, 올바른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지향하는 그녀에게 두 번의 암이 소실되고 재발된다. 나중에는 쓸 수 있는 항암제가 없어 통증이 심해질 때까지 모르핀도 맞지 않았다. 모르핀에 수동적으로 응하기 보단 능동적으로 응했다. 모르핀을 결국 맞으면서도 갈등하는 모습이 책속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치에는 암에 걸린 후 무엇을 하든 적극적이 되었다. 블로그에도 이런 문구를 적어 놨다.
‘길을 잃었다면 열정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예를 들어 유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90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그 만남을 실현시켜 왔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끙끙대지도 않았다. 병에 대해서도 이미 그렇게 돼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빠르게 단념하고 그 속에서 최선의 생활방식을 찾은 것이 암의 악화를 억제한 것이라 생각한다. 암에 걸린 것은 어찌 보면 좋은 의미에서 치에의 인생을 크게 바꿨다.

언제 죽을지 몰라 마냥 두려워하기보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하고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최선의 생활방식을 택해 암과 8년의 시간을 동고동락 했다.

치에는 ‘암은 기나긴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한 여성이 되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10분후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절실함을 잊고 살아간다. 내일 당연히, 어김없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나와 미소시루를 읽으면서 그리고 치에의 강한 일상을 간접체험 하면서 계속 떠오르던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명언이 있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치에를 열정적으로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다. 암이 그 원인을 제공했을 진 몰라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랑하는 남편인 ‘야스’와 이제는 보물이 된 ‘하나’와 조금이라도 오래 그리고 함께 추억을 남기며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것이 식탁으로 표현이 되었고, 교육관으로 인생관으로 표현이 된 것이다.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독려하는 도서는 너무 많다. 성공한 사람들의 도서를 보면 열정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도서보다 가끔 실수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간 치에의 삶에서 더욱더 큰 감흥을 느꼈다. 크고 작은 일상의 문제들도 죽음 앞에선 귀할 뿐이다. 8년간 치에의 몸속에서 함께 살아온 암이 치에와 야스 그리고 하나에게 알려준 것은 아닐까.

나는 단 1분, 1초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미래는 없다. 1초 후의 미래도 현재다. 그렇다고 안달복달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내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깨닫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치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을 쏟은 것처럼. 가끔 너무 힘들 때, 이 도서를 들춰보면 삶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간절함이 샘솟을 것 같다. 정말로 귀한 책이다.

이 도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4월 개봉예정이다. 이미 본 지인은 ‘슬프다’고 했지만, 단순히 눈물만 빼는 영화라면 너무 실망할 것 같다. 물론 암에 걸렸으니 슬프긴 하겠지만, 치에가 강인하게 인내하고 교육하는 것 그리고 자연이 주는 각종 음식을 생활화하면서 암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으면 좋겠다. 치에의 블로그 속 주옥같은 구절도 최대한 표현해줬으면.

그리고 내가 이책을 읽었다고 해서 치에처럼, 야스처럼, 하나처럼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리고 맛있는 군것질과 커피랑 작별한다는 다짐도 자신 없다. 그리고 난 새벽한시에 잠을 잤고 오늘 여덟 시에 일어났다. 난 타고난 야행성이다. 그리고 야행성으로 길들여졌다. 그런데 바뀐 것은(살을 빼려는 것도 있지만) 집에서 밀가루는 최소한으로 섭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군것질에 너무 길들여지지 않고, 커피를 먹었으면 허브티도 섭취하면서 몸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필사적으로 주려고 하는 반찬과 쌀을 계속 싫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거의 매일 밥을 하고, 반찬도 이제 내가 먼저 달라고 한다. 이게 나에게 생긴 변화다.

이런 생활습관에 이어 언젠가는 편안한 생활만을 영위했던 내가 먼저 손을 움직여 작게나마 채소를 기르는 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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