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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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작품 세계는 특유의 미학과 상징화된 기호로 치밀하게 설계된다. 그가 작품 곳곳에 설치한 트릭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웬만한 독자로서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 <프닌>에서 우둔하고 멍청한 인물로서 강조되는 티모페이 프닌 박사는 고의적인 희화화를 통해 이민자가 겪는 차별적인 시선과 고통, 은근한 멸시를 통해 나타내는 인물이다. 미국의 웬델 대학에서 러시아어 강의를 가르치면서도 실력이 온전치 못해 '프닌어'라는 괴랄한 문법과 발음의 영어를 사용하거나(단어마다 주석으로 표기되는 '프닌은 이 단어를 이렇게 발음한다'는 참으로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운 상황을 자아낸다) 목적지에 이르는 최단 시간을 계산하다가 기차를 잘못 타는 등,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묘사의 연속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프닌> 속 인물 풍자 속에서 우리는 죄책감 없이 마음껏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나보코프의 아름다운 언어유희와 기호화를 속수무책으로 따라가다가,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독자가 지금까지 우인화했던 인물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단지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어눌한 말투, 우둔한 행동거지를 가졌다고 해서 멸시하고 배제 당하기에 그는 너무나도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토착민과 다름을 근거로 유구하게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던 이주민들이 처한 현주소와 다름 없다. 우리에게는 감히 누군가를 차별하고 조소할 권리가 있는가? 이질성이 차별의 근거라면, 나 또한 현재 속한 집단이 아닌 외부의 집단에 편입되는 순간 이질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나는 차별 받아도 되는 존재인가? 다름이란 조롱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타국에 뿌리내린 모든 이민자들이 현 시점에도 겪고 있는 멸시의 시선을 생각하면 여지없이 씁쓸해지는 이유다.


나보코프의 과잉된 정보량과 난해한 문체는 머리를 한껏 복잡하게 꼬아대다 불현듯 탁 트이듯 시원한 길을 개통해주는 매력이 있다. 의도적으로 설치한 덫에 발목이 잡히면서도 독자를 비웃는 이 작가의 글을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누구보다 아름답고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의 예술성 덕분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나도 그중 한 명이다) 해피엔드를 싫어한다. 우리는 속았다고 느낀다. 가해가 규범인데. 파탄의 길이 가로막히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슬픔을 그냥 좀 가지고 있게 내버려둘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짜로 소유한 것이 슬픔 말고 뭐가 있습니까?

우리가 저지른 불찰이나 우리에게 저질러진 무례한 언행이나 우리가 못 본 척 무시한 위험은 이렇게 회상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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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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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순응하고 있을 때다.

소수가 전력을 다하여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Henry David Thoreau


대중이 장애인을 그리는 이미지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양상이라기보다 차라리 극단적 양분화에 가까운 것 같다.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숭고한 성공신화 속 ‘모범 장애인’(이들은 비장애인의 성실한 삶을 위한 동기부여, 교훈, 알량한 영감 따위로 곧잘 소비된다), 혹은 주요 언론의 전형적인 표현법에 따라, 시위 논란을 궐기하며 비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나쁜 장애인’. 당신의 인식은 어떤가? 아마도 다수의 비장애인들은 자신의 주변에 전자와 같은 장애인이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 장애에 편견 없다고 자부했던 인간 또한 사실상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의 장애인만을 인정하고, 비장애인의 인정을 받은 장애인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내리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혹은 그런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것).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장애인을 철저히 판단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저자 변재원은 기꺼이 나쁜 장애인을 자처한다. 「장애시민 불복종」은 지난 날을 오로지 개인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암투장으로 여겨왔던 저자가 전장연 합류를 결심하고, 장애인 대표로서의 시위와 투쟁을 시작한 계기 및 인간 변재원의 세밀한 과정과 연대기를 담는 에세이다. 인권 문제의 당사자성을 갖는 저자가 직접 발화하는 주제인 만큼 다소간 과잉된 감정이 녹아든 것은 사실이나, 기획 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 빈틈 없는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감성에 초점을 맞춰 읽어도 무리가 없다. 기본적인 글 재주가 좋아 읽기도 쉽고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 아니라고 믿었던 차별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첨예한 시각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부조리에 따른 장애인의 고충을 비애로 해석하여 비장애인의 동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분명 뜨겁지만 차분한 어조로 비장애인의 악의적인 편견에 더해 선량한 의도로 무장한 차별 역시 본질에서 탈피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이 책을 창비에서 출간한 김지혜 저자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연계해 읽는다면 우리가 여태 소외계층에 보냈던 시선이 얼마나 몰지각하고 시혜적인 태도였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서에서 김지혜는 이렇게 쓴다. 차별은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므로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민은 차별을 하면서도 차별을 하지 않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덮어씌우게 된다. 차별을 하면서도 우리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선의를 알량한 근거로 비겁하게 면죄부를 쥐고 개인의 서사를 위해 대상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개개의 시민을 저마다의 독립된 인격으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출발한 방역정책이었다면, 코호트 격리는 기저질환자, 장애인, 노인 등을 도매금으로 묶어 취급하는 조치 같았다. p. 55

2020년 2월 청도대남병원 코호트 격리 사건에 얽힌 진실은 잔인한 홀로코스트 역사의 재현이었다. 방역 정책을 표방하는 이 끔찍한 학살은 ‘코호트’라는 생소하고 낯선 학문적 용어의 외피를 뒤집어쓴 채 사건의 잔혹성과 살상의 수준을 교묘하게 은폐했다. 권위집단이 치밀하게 설계한 단어의 위계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사태의 심각성을 지워내고, 힘없는 이들의 억울한 죽음과 희생을 인식하지 못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인간다운 법률은 강자의 호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자들이 끌어낸 역사적 긴장감에 의해 비로소 논의에 부쳐진 내용의 결과물들이다. p. 231

전장위는 왜 불법적 시위를 자행하는가? 인권운동을 이유로 법치를 교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가? 이 질문들에는 장애인 시위 담론에서 배제할 수 없는 핵심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 아마도 법치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법률준수와 사법제도에의 순응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견고한 체제의 믿음에서 출발한 질문일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법적으로 옳은 것이 곧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며, 법에 저촉하는 권리 주장은 용인되지 않아도 된다는 법률만능주의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시민은 제도를 지키고 법률을 준수하며 국가와 사회의 안위를 보존할 책무를 갖는다. 다만, 당사자가 직접 구축하지 않은, 어쩌면 일방적인 권위의 사회구조 재생산 수단으로써 오남용의 가능성을 갖는 제도의 도덕성 여부는 신중하게 고려해볼 문제다. 법률에서 상정하는 국민이란 결국 사회적으로 합리성을 인정 받은 대상에 국한되며 장애인의 경우 기본적인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만연하다.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존엄성은 비장애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생활의 영역에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고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을 투쟁 없이도 누릴 권리가 있으며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저서 「공화국의 위기」에서 이렇게 썼다. 시민이 변화를 꾈 수 있는 정상적인 경로가 기능하지 않을 때, 더 이상 불만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때 시민 불복종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옹위를 위해 시민 불복종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시민이 모여 구성된 민주주의 국가가 어떤 개인을 소외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기 시작할 때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병폐한다. 장애시민의 불복종을 시혜의 시선이 아니라 인간의 평등권 확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행정학의 반응성(responsiveness) 이론을 언급하며 시민 불복종의 근거에 마지막 살을 붙인다. 반응성이란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에 적절하게 반응하여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민주주의 체제 아래의 행정부는 권위에 기대는 대신 시민이 요구하는 변화의 목소리에 응하는 반응성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장 빠르게 제도 개혁을 이루는 방법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많아지는 것, 더 많은 시민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 즉 행정부의 반응성을 촉구하는 것이랄 수 있겠다.


데모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그래서 데모를 한다고. 한평생 장애를 이유로 집 밖에 나설 수 없었고,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데모가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p. 234

작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등록장애인 인구수는 약 250만여 명에 달한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이렇게 많았던가, 비장애인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범했던 기억이다. 이렇듯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은 너무나도 쉬이 타자화되어 지워지고 감춰진다. 생산의 논리를 근거로 노동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이들을 한평생 괴롭혔던 것은 어떤 비난의 시선보다도 무관심이 아니었을까. 대중에게 조롱 받는 것이 더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던 투쟁가들의 절실한 의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평화는 오직 매 순간의 사투 속에 존재할 뿐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울컥하는 감정들이 우리가 지향하던 평화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러니 돌이켜보면, 시끌벅적했던 모든 시간이야말로 진짜 평화의 순간이었다. p. 307

사회 각지에 스민 차별은 전염병처럼 확산되어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는 개인적 차원의 방안으로 인권 감수성이 대두되는 요즘이다.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인식하지 않고, 차별에서 비롯된 특권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위해 저항 정신도 불사하는 주체들이 모인다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존재하는 자가 더 이상은 무존재로 치부되지 않고,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는 사회에 당도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 본 서평은 출판사 창비에서 제공 받은 「장애시민 불복종」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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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정신분석
스즈키 다이쎄쓰.에리히 프롬.리처드 드 마르티노 지음, 김혜원 옮김 / 문사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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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의 기본과 저자 에리히 프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깊진 못해도 장자와 노자 등 동양 사상가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 읽는 동안 반갑기도 했고, 알고 있던 사상을 신선한 시각으로 풀어내어 흥미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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