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왕이 못 된 세자들의 이야기

왕이 못 된 세자들 ㅣ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역사는 이긴 자의 편에서 많이 쓰여진다. 그런데 이 책은 이긴 자가 아니라 왕이 못 된 패자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저자 함규진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향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왕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 세자책봉을 받고, 힘든 교육을 받고도 왕이 못 된 세자들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조선시대의 시대상과 함께 절절하게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세자는 다음 왕위후보 1순위를 지정 받은 자이다. 많은 왕자들 중 단 한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자는 지금 시대의 2인자이다 보니 교육과 보양,호위에 특별한 관심과 노력이 기울여진다. 세자책봉 받기전 3,4세부터 하루에 세 번 글공부를 하다가 세자가 되면 왕이 되기까지 어린시절, 청소년시절동안 성리학을 공부하는 것에 전념해야 했다. 무예에 전념하거나 오락에 눈을 돌려서는 안되었다. 공부 외에도 왕실어른께 문안드리고 부왕을 모시는 일과 대리청정하는 일도 겸해야 했다. 마치 수도승이나 고시원의 수험생처럼 사는 재미가 없는 나날이었다.이런 시절을 보내고 나면 왕이 될 날이 오겠지 하며 앞날을 기약하며 살았다. 하지만 온갖 교육을 다 받고도 왕이 못된 세자들이 있었다.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어린나이에 한창 청춘의 열기가 끓어오르는 시기에 일체의 사를 없애고 오직 공으로만 살아가야만 하는 세자들의 삶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저자는 이와같은 세자들의 이야기를 사료를 증거로 이 책에 서술하고 있다.

 

조선의 세자는 모두 27명이고 왕이 된 세자는 15명뿐이었다. 왕이 못 된 세자들은 12명이나 있었다. 살해되거나 폐위된 경우가 5명, 병사한 경우가 6명, 왕조의 멸망으로 왕이 될 수 없었던 경우가 하나다.

 

권력 앞에는 핏줄이 필요없다. 최초의 세자 이방석은 이복형의 칼앞에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은 왕이 되지 않기 위해 미친척 했다고 했지만 사료를 통해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무인기질이었던 태조와 태종의 뒤를 이을 왕은 조용히 나라 안팎을 추스르며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문사형지도자여야만 했다. 시대가 문사형 왕을 원하고 있었다. 태종이 양녕을 사랑하고 세자로 책봉했지만 무인기질이 많은 양녕은 시대가 원하는 왕이 될 수 없었다. 글공부보다는 여색과 사냥을 좋아하는 세자를 도덕주의적 성리학을 공부한 신하들이 따를지도 의문이었다. 태종이 양녕의 폐세자를 고려하는 것을 신하들이 알고 있었음을 51쪽에 태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폐세자 되기까지 양녕과 충녕이 라이벌로서  긴장된 관계를 보이는 것을 저자는 태종실록을 통해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56쪽) 양녕이 왕이 되지 않기 위해 미친척한 것은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말인 것이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고생하다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 인조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다가 병으로 죽은 소현세자의 기구한 운명은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잠수함의 토끼처럼, 세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우울증에 빠져 고통을 당하다 죽은 사도세자.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고독속에서 사도세자는 질식해 죽었다고 저자는 표현했다.

 

어린나이에 병사한 의경,순회, 효장, 문효,효명세자. 연산군과 광해군인 아버지와 함께 폐위된 이황,이질. 이들도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기구한 운명의 세자들이었다.

 

마지막 조선의 세자 영친왕은 조선의 왕세자이면서 일본황실의 사위였으니 얼마나 자신의 입장이 난처했을지 소현세자만큼 불쌍한 세자였다. 노환으로 병들어서야 오게된 고국. 시대가 변해 아무도 왕을 찾지 않는 그 시대를 영친왕은 어떻게 받아 들였을지 마음이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행복은 단 한순간도 누려보지 못한 그들의 고통도 함께 알게 되었다. 조선을 500년 유지 하고 우리에게 이 땅과 역사를 물려준 우리 조상들.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사적인 삶을 희생한 조선의 왕과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