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를 사랑한다. 하와이-라고 가만히 불러만 보아도 설렌다. 하와이의 색과 향기는 내 세포 하나하나, 머리카락 한올한올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2018년 2월, 오아후 카일루아 해변의 소나무 아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이 곳에서 남은 내 인생을 모조리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1917년, 어진말
˝버들 애기씨,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 버들은 부산 아지매의 중신으로 하와이로 시집을 가게 된다. 하와이로 시집 가면 언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더구나 신랑감에 대한 정보는 달랑 사진 한 장과 부산 아지매가 이바구해준 것 뿐.

🏞 사진 신부는 왜 포와까지 결혼하러 갔을까?
가진 게 없고, 앞 날은 막막했기 때문이다. 버들은 ‘병아리 오줌 같던 본가의 원조가 끊긴 것은 물론 윤 씨 친정도 진즉 망한 터라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시집을 간다해도 이불 한채 해줄 수 없는 형편이다. 홍주는 시집간 지 두 달만에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고, 송화는 무당의 손녀라 돌팔매질을 받으며 자랐다.

🏞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포와
포와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친정에 돈도 보내줄 수 있다는 부산 아지매의 말에 버들은 친구들과 함께 포와로 떠난다.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포와 공항에서 사진 신부들은 신랑을 보고 엉엉 울게된다. 사진과 너무 다른 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랑만 다른 게 아니었다. 사진 신부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신랑을 뒷바라지하며 빨래터로, 식당으로 나가 일을 해야했다.

🏞 독립 운동 투사의 뒷모습
우리는 독립 운동 투사의 애국심을 찬양하며 그들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공부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두고 간 가족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 없이 자라야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키우며 노동을 해야하는 어머니의 고된 삶. 생사를 알 길이 없어 애타는 마음을 꾹꾹 눌러둔 채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혀야하는 삶.
버들의 아들마저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 참전한다고 하자 버들의 남편은 말한다.
˝세상에 멋진 싸움이라는 거이 없다.˝

🏞 작가의 말
결혼 이주민 여성들과 연관된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100여년 전 사진 신부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버들과 홍주, 송화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에도 우리는 사진 한 장 들고 결혼하러 한국에 들어오는 결혼 이주민들과 함께 살고있다. 그들 역시 친정에 도움을 주고 싶어, 더 잘 살고 싶어 한국으로 찾아온 사진 신부들이다. 그들에게서 버들의 얼굴을 찾게 될 것 같다.

영화 <국제시장>이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가장 평범한 어머니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현대사의 쾌거라는 그늘에 가려졌던 어머니의 이야기. 묵묵히 뼈를 관통하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지켜온 어머니의 이야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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