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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개인의 불편한 경험들, 고통스러움을 직접 마주하고 증명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가. 다시 말해 한 여성 가장이 두 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처럼, "월세만 남겨두고 갑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현실이냔 말이다. 작금의 불평등과 부재한 복지 현실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자마자 언론과 행정부가 일사천리 움직이는 것, 바로 이 국가가 개입하는 상황에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 돌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선처'가 이뤄지기 때문에 사회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듣고 받아들이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극단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보다는 외침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들은 좌절을 겪고 다시 사적인 상황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적인 언어로, 공적인 공간에서 문제제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뿔뿔이 흩어진 채 상담기관, 힐링 도서를 찾게 된다.
이렇듯 사회의 부재, 더 작게는 나를 둘러싼 공동체의 부재는 개인을 더 파편화된 채로 남겨지고 사회를 다시 잃게 된다. 이러한 순환 구조에서 민주주의는 잃어버린다. 단순히 민주주의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알지라도 민주주의가 효력이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속한 단위가 공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둥글게 앉는(45쪽)" 경험을 갖지 못하고 이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 너와 나를 바꾸는 그 과정이 없어진다. 이처럼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을 때, 이 정치공동체의 역량이 없음을 알아버리게 되자 사회에 대한 믿음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된다.
여기서 국가폭력은 이러한 불신과 단절에 기름을 붓는다. 특히나 국가가 행하는 재개발과 재건축은 장소의 상실을 야기한다. 평생 그곳에 기거한 사람들의 삶이 어린 장소를 파괴한다. 그리고 통치권력은 그들의 투쟁과 저항성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외부세력'의 개입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그것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치권력은 내부와 외부의 단절을 만들어내면서 내부의 고립을 강고하게 만든다. 내부의 고통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불순'하다고 딱지를 붙인다. 고통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들을 수가 없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한다. 오직 국가만이 개입할 최소한의 여지만 남길 뿐이다. 밀양도 그렇고, 쌍용자동차도 그렇다. 결국 고립된 사람들의 선택은 자기 세계의 파괴, 죽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청을 바탕으로 한 우정과 환대가 필요함에는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말의 힘을 살리는 것도. 하지만 늘 엄기호 선생의 책을 읽으면 남는 그 갈증이 있다. 돌봄 사회, 친밀성이 기획되면서도 그 친밀성을 행하는 노동을 주저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다는 것일까. 필요하고 중요함에 동의하지만 그저 추상적으로, 선언적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세워가야 할 지침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