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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은유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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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각자 자신만의 아름다운 고독 속에 마음껏 묻히도록 옭죄지 않았고, 그들도 나의 고독에 존경을 표하며 나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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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발레와 팬터마임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생각은 달라요. 진정한 발레, 진정한 팬터마임은 이런 게 아니죠. 발레나 팬터마임은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감정, 언어의 힘이 다 하는 곳에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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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어느 선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는지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죠. 하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언어로는 자신이 사랑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끼죠. 바로 이 단계에서 춤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 순간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 혹은 사랑의 감정은 오로지 발레나 팬터마임으로만 설명될 수 있어요. 다른 감정들도 다르지 않아요. 우리는 시시때때로 분노하고 질투하고, 기뻐하고, 슬픔에 잠기죠. 하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이 감정들도 언어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 순간 고요한 움직임으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 발레와 팬터마임의 무언의 동작으로 언어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합니다.
<빛나는 것, 그것은 -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의 춤> 中
"튤슈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요? 이유는 아주 많죠. 우선 그녀를 찾고 있지만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열정을 갈수록 강렬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열정은 점점 거세지고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불태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제 가슴은 불씨들로 가득 차 있죠. 그녀에게 닿을 수 없어 제 몸 안의 불길로 재가 되어 사그라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튤슈와의 사랑은 제게 찰나의 삶으로 남을 겁니다. 단지 번개가 치는 그 순간만큼만 그녀를 느낄 수 있죠. 이 때문에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사랑할 겁니다."
저는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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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단지 자신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의 존재 이유는 커지죠.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 이유는 튤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튤슈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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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요,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내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듣고 알아주시오. 단 한 사람도 내 이야기를 흘려 들어서는 안 되오. 귀머거리도 듣고 알아주시오. 젖 먹이는 여자의 모유가 꽉 찬 가슴도 들으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들끊는 피와 새로 태어난 아기의 혈관에 있는 피도 들으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상대방을 만지는 그 손가락도, 처음으로 키스하는 입술들도 들으시오. 욕구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도 들으시오. 그리고 역사, 시간, 지리도 내 이야기를 듣고 알아주시오. 내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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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그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던 것은 말이 아니라 소리였을지도 모르지. 날것의 고통을, 그리움을, 열정을 듣고 있던 게지. 때로 귀를 먹먹하게 하고, 때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소리 말일세. 그는 어떤 때는 굵은 목소리로, 어떤 때는 울다가 목이 메어 쉰 목소리로, 쉬어서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속삭이며, 속삭일 수조차 없으면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지.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그 순간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 원시적인 고함에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보았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남자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나지 않아 저렇게 소리치는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그는 우리 대신 튤슈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한 남자의 일생을 건 사랑의 여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