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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미안하오, 이렇게 걷게 만들어서. 이제 어디 가서 따끈한 국이라도 듭시다.'
이런 말이 듣고 싶어서 나는 이상주의자인 모양이다
윤대녕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떠올렸고(매번 쓰고 있다, 후후),
홍상수의 영화들을 볼 때면 윤대녕의 소설들을 떠올렸다
(최수철의 소설과 김기덕의 영화는 내겐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 말은 뜬금없다, 후후)
독자들은 <대설주의보>를 읽고나서 그가 다시 회귀했다거나 그 옛날의 감성에 닿아있다고 했는데
내겐 어쩐지 조금은 돌고돌아 제자리 같은 느낌이었다
회귀라는 말에는 아득함이나 진한 향이 느껴지지만, 돌고 돈다는 것은 맴돌다 윤대녕이 나가 떨어지거나 내가 나가 떨어지거나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의 소재와 이야기에 심하게 관록이 붙었다고 할까, 아니면 전문이 되었다고 할까...
3월, 겨울, 눈, 절, 버스, 일본, 출판사, 카피라이터, 맥주, 횟집, 상기, 그림, 오피스텔...
후후후
언제나 윤대녕의 반복되는 코드를 읽어내는 일
신비와 몽환의 분위기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문장들의 의미를 읽어내는 일
이 소설에 이르러서 급기야, 더욱더,
윤대녕씨의 실제 말투가 궁금해졌다!
직접 만난다면 괜히 이것저것 물으며 말투 듣고픈데, 풉, 사실 만나면 말도 못 붙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촌스러워서
<도비도에서 생긴 일>, 참 쓸쓸하고 씁쓸했다
윤대녕의 글 중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서산시청 뒤에 진국집이라는 유명한 한식집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흐흐흐
<여행, 여름>, 좋았다
순서대로 <보리>를 먼저 읽는다
언제나처럼 등장인물은 약속보다 먼저, 혹은 그저 머물다 기억을 더듬게 되는 옛 어딘가로 자꾸만 향한다
이번에는 '그'가 섬세하고 아련한 인물이고 작가가 자신을 살짝 드러내듯 꾸미는 감성들도 역시 닭살스럽게 돋아 있다, 흐흐
남자들이 윤대녕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일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에는 뭔가가 더 보태져 있는 느낌이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어쨌든 마음이 불쑥 허허로워져'(p. 214)
답이지 않을까 싶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복숭아나무 가지에 맺힌 꽃봉오리가 이내 터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 언제나 저 스스로에게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물의 성품을 깨닫고 살아가야 할 텐데.', '그게 누구든 과일과 칼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일순 바람이 불어갔던가.', 회색 물방울 무늬가 점점이 찍힌 붉은 넥타이가 수경의 눈을 찌르듯 압박해왔다.', '난 너무 오랫동안 익숙한 길로만 다녔어', '그제야 수경은 알 것 같았다. 저 커다란 나무가 정령처럼 마을을 지켜주고 있기에 다들 소리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나무에 와서 절하고 의지하면서 말이다. 수경은 오래전에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차라리 500년쯤 묵은 느티나무 옆에 혼자 집을 짓고 살겠어요. 아무리 함부로 내뱉은 말일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마련인가보다.', '아, 드디어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그때 그를 보내지 못해 결국 내가 나를 해치려 드는구나. 혀를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그를 붙잡지 않으리라. 수경은 몇 달째 입안에 담아두고 수없이 되풀이했던 말을 보리밭 고랑에 누워 읊조려보았다. 귓전에 개울물 소리가 들려왔다'
라니, 내 눈을 의심했지만...
여주인공의 독백들은 흔하고 유치했으나 언제나처럼 모든 여자들이 멋진 것은 아니니까! 이 또한 이번 소설집에서 처음 만나본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전한 '~이오' 체!, 풉,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아름답지
<오대산 하늘 구경>, '다소 불가해한 일이지만 그런 관계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런 관계'가 있다. 이젠 전공이 되었다. 내면이 고독한 남자들은 언제나 약하면서도 강한 내외적으로 외로운 여자를 잘도 알아낸다
여자들은 돈이 없이 애처롭거나 돈이 있고 평범하며 건조하다
남자들은 언제나 동일 인물이다, 후후
그리고 여주인공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삼촌이 다른 여자들에게서 구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에요. 말하자면 호텔 여직원의 훈련된 미소나 서비스 같은 거. 그런 건 원래 집에 없는 거니까요."
"나한테 바라는 게 없다는 것 잘 알아요. 단지 삼촌은 가끔 베풀어주고 싶은 어떤 여자가 필요한 거예요. 언니한테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초기에는 남자들이 신비한 여자들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궁금해했다면
이제는 여자(문자 그대로의 여자라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으로써)나 삶의 모든 것에 꽤 초월해 있고, 말을 아끼며 명상단계로 들어간 듯 보인다
소설집 <대설주의보>를 읽고 문득 앞으로의 윤대녕의 소설이 홍상수나 이창동의 영화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같았으면'이라는 의미는 내용을 떠나 내가 그 감독들의 영화에서 느끼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윤대녕의 소설도 이젠 담담하고 편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평론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윤대녕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아~ 훌륭하구나, 후후
사실 아주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되려 평론 읽고 되새김질 했다는... 내가 언제나 깨달음과 정리가 많이 모자란다 =ㅅ=;;
윤대녕씨가 신간을 발표해서 감사하고, 품절 혹은 절판인 생각의 나무 출간 도서들이 속속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출간 되고 있어 감사하다
다음 글들이 꽤 궁금해지는 소설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