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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 채식주의자 - 입맛과 신념 사이에서 써 내려간 비거니즘 지향기
정진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5월
평점 :
채소를 좋아해서, 동물을 좋아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비건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우리가 먹는 우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고기는 어떻게 생산되는지, 달걀은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과정에서 가축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고 살았다면 차라리 마음 편했을 이야기들.
신중하게 행동하는 편이고, 비건의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건으로 전향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극소심 형 인간이고, 에너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식당에서 요리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지 확인하거나, 채식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소극적인 채식 지향 생활을 시작했다.
동물성 음식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해 보고 가능한 선에서 대체해나가면서 동물성 음식 섭취를 줄여나갔다.
건강한 식재료를 꼼꼼히 고르고, 매일 균형 있는 자연식 식사를 챙겨 먹고, 책에서처럼 멋진 채식 요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아는 만큼 실천하는 사람이면 참 좋으련만...
에너지가 부족한 와중에도 되도록 건강하게 집에서 챙겨 먹으려고 애를 썼지만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의 현실은 매일 요리를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인스턴트나 외식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 선택하지 못한 채 결국 굶거나 대충 때우게 되는 날도 잦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나름대로는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되려 억눌린 욕구는 과식과 폭식으로 터져나왔다.
고기는 안 먹어도 괜찮지만, 해산물은 좋아해서 '페스코 채식' 지향으로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마음속에서는 '고기를 먹는 건 죄책감이 들고, 해산물은 괜찮은 건 모순 아니야? 동물성 음식을 이렇게 자주 섭취하면서 채식 지향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나?'라는 등, 질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와 '부족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괴감과 죄책감까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점점 몸과 마음이 뒤틀리는 걸 느끼고 뒤늦게서야 나를 들여다보았다.
통제되는 상황을 힘들어하고, 완벽하려고 욕심을 내고, 노력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는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과 위로를 얻는 사람인데 그게 충족되지 않아서 점점 힘들어졌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은 조언들을 참고해 나의 식사를 재단하던 기준들을 최대한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고, 나의 욕구와 이미 하고 있는 많은 노력을 알아주며 유연하게 몸과 마음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서 먹으니 전보다 에너지가 훨씬 좋아졌다.
채소를 사랑하고, 채식을 즐기고 선택하려고 하고, 육식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나의 식생활은 비건, 채식주의, 채식 지향, 자연식 등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어떤 카테고리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의 성향에 맞게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제한'하기보다는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며,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나만의 식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내가 즐겁고 건강하게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언젠가는 '채식주의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아마 유연하게 '불완전한 채식주의자'로 살 것 같다.
이런 나의 고민을 책 '불완전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덕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해서 이렇게 한 번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채식'을 하고 싶지만 '비건'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불완전 채식주의자'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천하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작가님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
모두가 완벽한 비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한 끼의 육식을 줄이고 맛있는 채식을 먹는다면, 채식을 선택하는 일이 쉽고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