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작은 생각의 조각이었다.

이틀 전 모처럼만의 여유를 누리고 있던 내 머리에, "안녕, 잘 있어."라는 말이 스쳤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한 마디의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해 본 적이 있던가?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한 적이 있었던가?

 

-8살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한 아이를 3년 동안 쫓은 적이 있다.

결국 좋아한다는 말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그애는 작별 한마디 없이 이사를 갔다.

갈 데 없는 마음은 그때부터 배회하는 연습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이사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나는 줄곧 떠나보내기만 했다.

내가 떠나본 적이 없다.

항상 익숙한 것은 누군가의 뒷모습이지, 남겨진 사람의 얼굴이 어떨지 생각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15살에 처음으로 이별을 고했다.

나는 그런 것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되돌아갔다.

그래서 결국 남겨지는 쪽은 나였다.

부질없었다.

지금까지도 괴로운 것은 나다.

떠난 쪽이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지 모른다.

이해할 수 없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애니로 보았다.

워낙 잘 만들어진 터라 입소문도 타고 있었고, 음악이 있다는 얘기에 혹해서 이번 봄에만 2번을 보았다.

그리고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에 <이치고 동맹>을 찾아 읽었다.

책이 90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애니와 책 사이의 갭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치 그대로 옮겨온 듯 자연스럽다.

 

-차이점은 정말 많다.

주인공들은 서로 일대일 대응이 아니다.

 

-나는 우에하라 나오미를, 미야조노 카오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환경 특성 상, 그 심리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특유의 변덕스러움.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유의 변덕스러움에 대해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늘 기타자와의 역할이었고, 아리마 코우세이였다.

그래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리마가 마지막으로 연주하며 카오리를 보내는 장면에서 울었다.

카오리가 아리마에게 기대서 울었던 장면에서는 울지 않았다.

한 번도 왜 그런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나는 슬픈 영화를 보아도 항상 남겨지는 사람의 슬픔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반쪽짜리.

 

-처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고민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치고 동맹>을 다 읽고 문득 저런 생각이 났다.

이 책은 나에게 떠나는 것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물론 더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자살'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떠나보냄에 익숙하다고 해서 그 이별들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모두 달랐고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아픈 것들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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