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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
박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2월
평점 :
부엌에서 노트북을 펴고 창밖을 보니, 돌담을 휘감고 있는 넝쿨에 벌새가 날아다닌다. 나는 벌새는 동물도감에서만 있는, 어딘가 아마존이나 남미같은 숲이 우거진 곳에서만 살고 있는 생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제주도는 이중섬거리처럼 사람 많은 길의 화단에도 내가 일하는 관공서 옆 공원에도 그리고 우리집 돌담과 밭에도,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짧은 길에도 산다. 새라고는 해도 깃털이 있는 것일까 싶게 머리말고는 날개짓이 너무 빨라 모르겠다. 벌과 나비의 중간같은 느낌. 그래도 생각보다 아주 작지는 않아서 멍하니 바라보다 눈에 잘 들어오곤 한다.
비어있는 식당 마당에 주차를 해놓곤 하는데 그 마당 한가운데에 큰 벚나무가 있다. 제주시나 남도에 비해 의외로 이번엔 서귀포가 좀 늦게 개화를 해서 반쯤은 봉오리 반쯤은 활짝 핀 벚꽃이 그냥 차에 올라 타 퇴근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이름 모를 새가 바쁘게 지져귀고 날으며 꽃의 꿀을 딴다. 새도 꽃의 화분을 먹고 열매맺기를 해주는 생물인것을 읽어서만 알았는데, 상상에는 벌처럼 작은 새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제법 큰 새다. 저 덩치가 꽃가루만 먹고도 괜찮은건가? 아니면 간식처럼 달콤함을 즐기는건가
박준이라는 여행작가의 이름은 생소하지만 카오산로드와 CD는 내 서재에도 있다. 우연히 티비에서 다큐를 보며 (그 당시만해도 여행다큐가 별로 없었나...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도 무언가 가슴에 인상깊었고 다큐와 책 모두 히트를 했으니) 책은 더 알찬 내용이 많겠지하고 구입하여 읽고는 다큐 내용과 너무 똑같아서 약간 실망하고 그 후 쭈~~~욱 처박혀있다.
지금은 마음에 드는 작가의 근황을 계속 검색해서 작품도 찾아가며 보지만 그 땐 몇 몇 소설가이외 장르작가는 기억해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가 그 후 참 많은 여행을 하고 좋은 책을 썼구나.
이 책은 무려 2010년에 나왔던 책여행책이라는 작품을 편집자의 권유로 손봐서 재출간한 것이다. 여행과 책은 뗄수 없는 관계이고 책 속 장소나 인물을 에세이처럼 쓰거나 작품의 무대를 찾아가 사진도 찍고 감상도 적어 만든 책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익숙한 플롯이 아닌 무엇이 책이고 무엇이 여행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눈치채기 어렵다. 내가 읽어본 책은 거의 없지만 테마로 나온 책을 전혀 몰라도 된다. 그저 작가는 그 책을 읽고 직접 갔는지 거실에서 여행했는지 자기가 본 작가에게 빙의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겨울보다 봄에 보면 좋다. 봄과 여름 해외여행 준비를 하는 사무실사람들 사이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었는데, 박준 작가는 이 책을 쓰고 다시 마음이 울렁거려 긴 방랑을 떠난다고 하지만, 나는 소풍하듯 여행하듯 동네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덧었는 벚꽃도 가득하지만 그보다 왠지 더 반가운 복사꽃을 만지고, 별같이 하얀 싸리꽃과 눈부시게 물오른 유채밭은 소녀틱한 감성으로 걸어야지.
도시에 살면서도 봄이면 늘 마음이 울렁거려 실실~웃으면서 돌아다니고 해외여행 초저가를 검색하거나 지방의 펜션이라도 예약하고 했는데...제주에 온 보람이 있다.
아~방금 전화로 내일 농번기 시작전 마을에서 소를 잡아 잔치를 한다고 한다. 이주민이니 찬조금 조금 들고 가 인사하고 고기 먹으러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