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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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민증번호는 820101로 시작한다. 원래는 811231이지만, 하루 늦게해서 빠른 생일로 올리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권유로 우리 모친은 나를 하루 늦둥이로 올리셨다. 뭐가 좋은지는 살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다. 12월 31일 생일파티를 하며 한 살 더 먹었다고 축하를 받았는데 그 다음날 새해가 되었으니 한 살 더 먹었다고 하고 구정설에 떡국을 주시며 이제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신 부모님때문에...나는 초등학교때 내 나이를 3X로 계산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너무 무난하게 살았다. 얼마나 무난한 삶이었는지 나와 동갑인 여자의 무난한 삶이 소설이 될 수 있는 정도였다. 그게 충격적이었다. 격동의 한국사와 인류사에서 이 정도로 시대의 혜택을 받고 태어나 성장하였고, 사랑과 희생으로 키워주신 모친과 (모친만이다) 나의 무난한 성격덕에 지금의 힘든 시절을 그럭저럭 크게 흉한꼴 안당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무난한 나의 성격이...수없이 나를 크지 못하게 가둬두어 무난하게 만들어진 결과일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인이 되어서 점점 나의 개성과 장점이 드러나면서 아주 어릴 적 내가 매우 활발하고 리더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 막연히 기억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악의가 없었으며 사회와 가정의 틀이 그렇게 잘 짜여져 있었고, 이를 깨트리면서까지 하고픈 것도 해야할 것도 없었으니까.

 

급여를 떠나 나름 근무환경이 민주적이고 개인의 역량을 아주 잘 키워주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곳에 있다가 이 시골구석....시골치고 없는 곳 없는 트렌디한 곳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조선시대에 가까운 곳. 그리고 제일 고지식하고 예의없는 공공기관에 서럽기 그지 없는 계약직으로 있으면서도 그냥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인데 그동안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의 삶이, 나의 아픔이, 나의 소심함이 수많은 82년생 김지영 모두가 겪는 것이라면 이는 나 개인의 삶이 아닌 시대의 이야기이다.

 

왜 우리 82년생 여자들은, 꿈도 패기도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우리 윗세대처럼 여자로서 엄마로서 치열하게 희생하지도 못하고 아랫세대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깨져보지도 못하고.

 

눈치보고, 조용히 참고, 적당히 살고, 아랫세대와 경쟁하지 않고 간신히 기성세대의 꼬리를 붙잡고 살고 있음에 안도하면서.

 

슬픈 이야기도 충격적인 이야기도 없는데 이 82년생 김지영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공감되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우리 세대의 기억과 무력감을 객관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아닐까.

 

다행이(?) 좋은 남자를 만나 어쨌든 사랑하는 자식도 낳았다.( 그 과정조차도 82년생 김지영다워서...결국 그녀는 타인의 힘을 빌려 미친년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저렇게 운좋게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고 자녀를 낳는 짓은 더더욱 못할 것 같다.

 

10년쯤, 20년쯤 이 82년생 김지영이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또다른 82년생인 내 인생과 비슷할까, 아니면 나는 가장 많은 김지영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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