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릴린 - 이지민 장편소설
이지민 지음 / 그책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전쟁이 지나간 자리,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최소한 그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참 태어나기 전이었고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내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책을 통해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알아야 할 것과 모르고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에 커다란 구분을 짓는 나에겐 이 책이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와 말릴린.
소설가 이지민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그녀의 등단작과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시대극(?), 아무튼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을 쓴 소설가로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햇볕에 뜨거워져 만질 수 없었던 미끄럼틀마냥(그냥 마냥 좋다는 의미) 나는 이 작품에 빠져 들었다. 당시 나는 농담과도 같이 이 소설을 여러 번 보게 될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하나하나의 문장들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제 6.25의 모습은 닳고 해진,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서 저만치 치부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렸을 때 신었던 신발이 내가 싫어하는 갈색으로 실용적인 면에서만 우수한 신발이었다. 여기에서 실용적이라는 말은 오래 신을 수 있다는 말과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이 꼭 그랬다.

통역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팔지 않아도 되는 여자, 당시 미국부대의 위문 공연차 왔던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맡으면서 운명과도 같은 두 여자의 삶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간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심각할 정도로 폐허의 모습을 한 서울의 모습은 마릴린 먼로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모습들을 설명해 주고 있고 묘사해 주고 있어 충격과도 같은 느낌을 읽는 사람에게 전해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녀린 여인의 모습은 또한 전 애인과의 숨막히는 과거사를 들춰내고 묘하게 끌리는 모습들을 작가는 요소요소에 넣어 마치 형사가 언론에 노출하는 장난과도 같은 모습들을 규칙적으로 보여준다.
전쟁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서울의 모습,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다가서는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영화의 속도감을 책 속의 문체로 승화시켜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마릴린 먼로의 화려함이 수족관에 공들여 잡아 놓았던 것들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느낌, 전쟁과 대비되는 모습들이 때론 설명하지 않아도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일화로 읽힐 수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정해 놓은 규칙은 묻혔던 과거의 우리네 서울 풍경과 머릿속에서 떠오른 풍경 사이에서 접점을 이루고 또한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과거의 한 단면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

당시의 시대 모습을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리고 싶다면, 또한 내 아이에게 알려 주고 싶다면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읽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모던보이’를 본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