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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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너를 빌려주더라도 너 자신에게는 너를 주어라" (p.165)

 

장 뤽 고다르가 영화 <Vivre Sa Vie > 에서 인용했던 몽테뉴의 말이다. 수전 손택의 맥락에서 이 말은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현존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삶이다.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이 말은 이기적인 뉘앙스를 갖지만,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현존하기 위해 그녀는 역설적으로 세계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p.29)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작가의 책무만은 아니다. 작가들도 어려워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존재방식에는 근본적으로 폭력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삶 또한 타인에 대한 공격을 이미 내장하고 있다.

 

"제 말은 '산다'는 건 일종의 공격이에요. 세계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온갖 차원에서 공격과 연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이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을 점유하고 걸을 때마다 식물군, 동물군, 작은 생물들을 짓밟게 되죠. 그러니까 삶의 리듬의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공격이라는 게 있다는 거죠. 제 생각에는 현대의 고유한 형태의 공격성이 특히 '고조'되는 측면이 카메라의 활용으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 세계를 수집하는 것이지요."(p.87)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은 '온전한' 것이어야 한다. 사유하지 않는 관심은 그것이 상당히 계몽된 형태라 할지라도 클리셰에 불과하다. 세계를 수집하는 방식으로의 관심은 왜 부정확한 것일 수밖에 없는가. 끊임없이 해석에 반대하는 수전 손택의 말에 그 이유가 있다.

 

"질병을 해석하지 말라,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설명을 하거나 이해하려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그냥 x의 참된 의미가 y라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자체로서의 사물을 저버리지 말라는 거죠. 그 자체로 정말로 존재하는 사물이니까요. 질병은 질병이에요."(p.54)

 

"해석은 세계를 빈곤하게 하고 갈취한다. 바꿔 말해 '의미'라는 유령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다. 세계를 이 유령 세계로 뒤바꾸는 것이다. …… 세계, 우리의 세계는 이미 충분히 고갈되고 빈곤해졌다. 복제품들은 모조리 꺼져라. 그리하여 우리가 다시금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더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해석에 반대한다>)

 

해석을 거부하는 행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지만 다행히 우리 옆에는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소명으로 부과한 수전 손택과 같은 작가들이 있다. "만사를 더 단순하게 만들려는 불가피한 기류"속에서, 돈키호테적이라는 놀림에도 불구하고 "만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책이라는 모습으로 우리의 옆에 있다.

 

"당신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양상의 전부와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요.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들은 우리 꿈 그리고 우리 기억의 자의적인 총합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책들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할 뿐입니다.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요. 책들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에게 보내는 편지',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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