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각하가 읽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보좌관들이 준비한 보고서를 읽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데 그 틈에서도 읽어야 하는 것이 문학이라면 문학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얀 마텔은 그러한 취지로 문학을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에서 유용한 것들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줄이라고 말한다.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혼자서 빈둥대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는 기능적인 문제보다, '이것은 왜 이렇고, 저것은 왜 저럴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p.27)

 

얀 마텔은 하퍼 수상에게 조용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문학을 권한다. 하퍼 수상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일수록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리지만, 얀 마텔은 삶은 본래 조용한 것이며, 정신없이 달리는건 우리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문학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나 추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과 세계와 삶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각하에게는 문제가 된다. 얀 마텔은 각하가 문학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면, 도대체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을 어디에서 얻었겠으며, 인간다운 감성을 어떻게 구축했을지" 우려스럽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이런 개탄을 옆에서 듣고 있자니,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각하에게만 추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식은땀이 흐른다.

 

"(존재론적으로) 문학은 그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무지를 추문으로 만든다. 여기서 무지는 가장 나쁜 무지로서 자기 기만을 겨냥한다. 문학은 무디게 갇혀 있는 일상인의 의식이 하나의 코미디, 혹은 거짓된 삶이라는 것을 드러나게 한다."

"(의미론적으로) 또한 몽상의 소산으로서의 문학은 인간의 실현될 수 없는 꿈과 현실사이의 거리를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드러냄으로써, 그 거리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억압되어 있는 가를 나타낸다." (『한국문학의 위상 』, 김현)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써먹을 수 없다는 특징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바로 그것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힘에 대해 감시체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 것은 김현이다. 인간을 억압하는 힘들에 대한 감시 속에서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므로 인간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고 했다. 얀 마텔 역시 문학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해 읽어갈 때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것입니다. 이런 부지불식간의 자기점검에서 때때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미소를 지으며 인정하게 됩니다. … 때로는 불안감에 싸여 부인하고 싶은 마음에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는 우리는 더 현명해지고 존재론적으로 더 단단해집니다."(p.43)

 

그런데 이러한 말은 마치 각하 자신을 위해 문학을 읽으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통치자가 더 현명한 사림이 되는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녕 중요한 일일까?

 

"결과적으로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은 고깃덩어리와 천사 사이를 왔다갔다 하게 만든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위상 』, 김현)

 

각하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이, 그리고 시민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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