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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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작가는 성이 있고 말이 있는 왕국을 묘사하기 시작하지만 자기 자신의 얼굴선을 그리는 것으로 끝맺는다고요."

 

"내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런 말을 했기를 바랄게요! 아, 그 글을 썼던 게 기억나요. 자기 앞에 끝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배를 그리고 닻을 그리고 탑과 말과 새 같은 것을 그려요.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그려온 것들이 자기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 이야기는 물론 작가에 대한 은유에요. 작가가 뒤에 남기는 것은 자기가 써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라는 거죠"(1980년 3월 컬럼비아대학교, p.135)

 

보르헤스가 훗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을 철회하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보르헤스의 글에 새겨진 그의 이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보르헤스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건 단연코 '미로'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세계관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세계를 수수께끼로 생각해요. 그에 관한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 거라는 점이지요. 나는 이 세계에 수수께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늘 경이로움을 느낀답니다."(1980년 4월 메사추세츠공과대학, p.146)

 

세계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생각하는 작가의 글은 미로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출구가 없는 미로. 보르헤스는 수수께끼에 늘 경이로움을 느낀다지만, 해답이 없는 수수께끼는 때론 악몽이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p.152)

 

글쓰기를 받아쓰기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 출구없는 미로에 함께 발을 내딛는것과 같을 테다. 우리는 그곳에서 보르헤스와 함께 "끊임없이 경험하고 행복하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는 수밖에"없다. 물론 사는 일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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