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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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은 영화제에서 어느 비평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신은 죽음과 기억의 작가라고 자주 소개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늘 '뒤에 남겨진 사람'을 그리고 있다. 스스로도 그것을 의식하는가?" p.21

 

히로카즈는 비평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자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허나 당사자의 깨달음과 무관하게 그런 성향이 그의 본질임은 관객들은 이미 눈치챘을 듯 싶다. 깨달음이 찾아오기 전이었는지, 그 다음이었는지 히로카즈가 제목에 이끌려 샀다는 책에는 그의 이상형이라고 부를만한 이런 철학이 담겨 있었다.

 

"단가는 기본적으로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상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단가 형식의 기본이다. 따라서 짧은 단어에서 그 느낌을 해석해내는 독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시형이기도 하다."p.19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던 히로카즈의 신작  <바닷마을 다이어리> 또한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였다.

 

바닷마을에 건너온 소녀 스즈의 언뜻 행복해보이는 일기 속 행간에는 표현되지 못한 말들과 감정들이 있었다. 세 언니들 또한 말하지 않는 것들의 주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결국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사라진 것의 주변에 남아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 건 무얼 직접 털어놓아서가 아니었다.

 

말하지 않고 있는게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러니까 어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털어놓아도 된다는 환대의 형식이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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