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
소재원 지음 / 새잎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가해자가 없는 사건 그리고 이기적인 가장들

 

<>,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한결같은 생각은 가장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엄마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이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 즉 가장이 되는 순간 피해자 보다는 내 가족, 내 아이들이 먼저이니까 말이다.(대부분이 그렇다는 거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집에서는 요새말로 센 척을 하지만 사회로 나가는 순간 힘이 없다. 그래서 강자의 편에, 가해자의 편에 선다. 하지만 이건 선견지명이 없는 행동이다. 언젠가 반대로 내가,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기사가 나가고 나자 사람들은 우리 회사 제품을 불매운동해야 한다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친일 기업인 데다, 힘없는 영업소 지점장들을 압박해서 기업 배를 불린다며 온 세상이 우리 회사를 욕했어요. 떳떳했던 나였어요. 대기업에 다니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던 나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저는 죄인이 되어 있었어요. 내가 한 것도 내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친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나도 힘없는 가장일 뿐인데 말이죠. 사람들은 우리 기업 식품들을 불매운동했고, 나와 민지 엄마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56쪽 중에서-]

주인공 민지 아빠는 1년 전 세상에 나온 지 100일도 안된 민지와, 사랑하는 아내 민지 엄마를 잃었다. 세 가족이 된지 90일 만에 말이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걸 사온 사람은 민지 아빠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홀로 소리 없이(인권 변호사 한길주와 국회의원 오민석을 만나기 전까지.) 그 거대 기업과 싸우고 또 싸운다. 그렇다고 보상을 바라는 것도 사과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해당 기업의 회장의 입에서 민지 아빠 당신이 죽인 게 아닙니다,’ 이 한마디면 되었다. 그런 그도 한때는 또 다른 가해 기업의 사원이었다. 그때의 민지 아빠도 피해자들을 원망했다. 회장대신 피해자들을 제거하기 급급한 준호 아빠, 전세금과 대출 빚에 허덕이는 인영엄마, 정년을 앞둔 현재 아빠, 12살 사춘기 아들 윤석 아빠, 청문회가 끝나면 해외여행을 가자는 윤지 아빠, 20살 아들의 대학 등록금 앞에 무너지는 기준 아빠. 그야말로 선견지명 좀 가졌으면 좋겠다.

 

[“15% 하락한 만큼 직원을 정리하면 그만이야. 20% 하락한 만큼 공장 가동을 중지하고 정리해고에 들어가면 그만이지. 50% 하락한다고 가정을 한다 해도 회사의 절반을 매각하면 전혀 손해 보지 않아. 무슨 뜻인 줄 알겠나? 아무리 저놈들이 저렇게 발악해도 내 수익은 절대 줄어들지 않아. 아무런 죄 없는 불쌍한 사람들만 실업자가 되는 거지.” -120쪽 중에서-]

떳떳하지 못한 기업에서 스스로 퇴사하는 것도 진정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가해 기업은 바로 힘없는 가장들의 밥줄을 이용하는 거니까.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에 가해 기업 사원들의 자진 퇴사까지 더해져 단 한명의 사원이라도 남아있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 기업 회장이라 한들 손해가 없을까? 그리고 그 기업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법으로는 분명 제가 변호하는 분들이 보호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이가 죽었고, 아내가 죽었으며, 남편이 죽었습니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고, 평생 스스로 숨을 쉴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가족을 잃고 장애를 얻었는데 가해자는 없답니다. -151쪽 중에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이건 피해자 편에 서는걸 두려워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균제를 세정제로 속여 허가를 받아서 판매했다는 건 그야말로 악마 같은 행동이다. 만약 자영업자가 같은 행동을 했어도 가해자 편에 설 수 있을까?

민지 아빠가 사원으로 있던 가해 기업을 회상하는 부분은 몇 년 전 어느 식품회사 사태를 연상케 하는데 소비자들의 석 달을 못 넘기는 불매운동과 에필로그에서의 청문회가 끝나고 1년 후 또 다시 홀로 남겨진 민지 아빠의 모습을 보며 국민들의 분노가 오래가지는 못하더라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해당 식품회사의 커피 음료를 절대 사먹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기업에 내 몇 백 원, 몇 천 원 조차도 투자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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