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 추정경 장편소설
추정경 지음 / 놀(다산북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숨고 싶은 곳 벙커

 

주인공은 자신을 반장이라고 칭하는 ’.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소신이 강했던 김하균이 중학생이 돼서는 어설픈 일진노릇을 하니 못마땅하기만 하다. 하루는 김하균의 악행을 보다 못한 여자아이의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씩 몰아붙이기 시작하더니 반장의 주먹에 쓰러진 김하균을 여섯 아이들이 집단폭행을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말릴 생각도 없이 구경만 할뿐이다. 김하균은 담임선생님의 차로 병원에 실려 가고 는 한강 노들섬 남쪽이라는 의문의 문자를 받게 된다. 한강변으로 간 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또래 소년이 자살하는 줄 오해하고 뒤따라 들어가서 도착한 그곳은 벙커였던 것이다. 벙커에 오자마자 김하균이 죽었다는 문자와 함께 는 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겁에 질린 는 한 달 동안 벙커안의 규칙에 따르며 메시, 미노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그 사람의 과거, 자라 온 환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것인데,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에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이라는 말이 쏙 빠져 있는 셈이다. 나는 힘들게 노력을 기울여 녀석을 이해하게 되는 게 싫어서 일기를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106]

김하균의 일기를 보는 순간 그토록 미워하던 친구를 이해하게 될까봐 고민하던 는 너무 궁금한 나머지 하균의 일기를 읽고 예상했던 대로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하균을 이해하게 된다. 김하균을 가해자로 만든 건 가정폭력꾼 아버지와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한 어머니였다. 집단 폭행을 당하던 그날도 아버지를 못 이긴 어머니는 하균에게 돈 봉투를 쥐어주고 집에 들어오려는 아들을 막은 것이다.

 

[벽에 난 그 칼자국이 꼭 미노의 생살에 그어 버린 칼자국 같아서 마음이 저려 왔다. 그 상처를 손으로 보듬다가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고 말았다. 190]

6살 민호는 제일 믿고 보호받아야할 가정에서 새엄마라는 사람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했다. 그리고 폭력의 보상처럼 주어진 것은 사탕과 초콜릿처럼 단맛이었다. 그러던 중 새엄마라는 사람의 폭력이 도마 위에 오르자 민호는 유일한 위안이었던 단맛마저 빼앗겨버리고 그래서 우는 아이는 속옷 한 장만 입혀진 채 베란다로 내몰렸다.

 

<벙커>를 읽고 깨달은 건 나는 여전히 복수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거다. 김하균이 엎어진 채로 여섯 아이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부분에서 학창시절에 나를 괴롭히는데 주동했던 동창들이 김하균처럼 당하는 장면을 상상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가해자 아이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것과 그들도 보듬고 이해해줘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러면 나는 냉혈인간인걸까? 반장의 삶이 부러워서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서도 김하균이기를 부정했던 는 자퇴하는 순간에라도 자신에게 가장 많이 피해를 당했던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기에 동정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옛 동창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한 탓에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들을 동정도, 용서도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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