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앵그리 애나 지음 / 채륜서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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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저자의 공황발작부터 마지막 우울증 상담까지, 250일간의 이야기. 문득 2년 전 가을날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시선공포증을 깨닫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모바일 심리상담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사실 그때의 나는 처음 입문반 수업에서 만난 농인(청각장애인) 선생님이 모른 척 그냥 넘어갔더라면 계속해서 피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나에게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상처받은 마음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43쪽 중에서-]

문장 완성 검사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애나가 완성한 문장은 내 마음을 그대로 받아 적은 기분이었다. 30대 초반까지의 직장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영화를 볼 때도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순간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니까 말이다. 아주 강한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과거.

 

[그래서 드디어 나의 육신이 담임에게서 풀려났을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아파트 꼭대기 층에 올라간 것이다. 내가 오늘 여기서 뛰어내리면 담임이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허튼 기대를 하면서 아래를 바라봤다. -153쪽 중에서-]

극단적인 선택의 충동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교폭력, 담임선생의 괄시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어서옆에, 재작년에는 친형제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참함옆에, 작년 10월에는 9년 만난 친구와 헤어지고 의미 없어져버린 삶옆에 따라붙은 건 복수심이었다. 죄책감을 심어주겠다는 복수심 말이다.

 

[“오늘은 제가 좀 더 세게 말해볼게요. 애나가 이대로 가족에게 심리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면요. 앞으로 좋은 아내도 될 수 없고 좋은 엄마도 될 수 없을지 몰라요. 엄마가 스스로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의 자식에게 행복을 가르쳐줄 수 있겠어요.” -189쪽 중에서-]

나는 계모에게 자란, 남편에게 배신당한 내 외할머니를 보고 너무 일찍 깨달았다. 나도 절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독신주의를 택했다. 본인의 딸을 타박만하는, 손녀인 나보다 삼촌의 아들인 손자들 편만 드는 외할머니가(나에겐 돈으로만 잘했다.) 엄마의 계모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가 너무 싫다(그녀에게 배운 대로 돈으로는 잘한다.). 내가 성인이 되는 동안 더 많이 늙어버린 그녀는 평소엔 독립심이 강하다가도 내 엄마만 보면 징징대는 모습은 더 얄미웠다.

 

학창시절의 가해자들보다 못한 삶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니 분노로 발악하던 20대의 나. 덕분에 해외유학파라는 꼬리표도 달고, 번역사라는 꿈도 이루고, 주변사람들의 부러움도 사고.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일중독을 선택한 지금도…….

 

 

  

-채륜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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