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안개초등학교 1 - 까만 눈의 정체 쉿! 안개초등학교 1
보린 지음, 센개 그림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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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https://m.blog.naver.com/03x24/222480180948

◇ 프롤로그
안개초등학교는 지은 지 10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된 학교다.

◇ 밑줄
배경처럼, 공기처럼 지내자.

​배경이나 공기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

그러나 담임 선생님은 지은이를 자꾸만 묘지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지은이 안의 지은이가 뭉개졌다. 선생님 눈에는 그게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

“쥐님, 쥐님, 목 없는 쥐님, 오늘이 딱 좋은 날일까?”

/

5교시는 국어 시간이었고 직딱샘은 책을 읽고 있었다. 창문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햇빛도 교실 구석구석까지 들어왔다. 등이 따듯하게 데워지고, 배도 불렀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도 있었다.

/

“조막만 한 조마구, 걸핏하면 혼나지, 혼나면 커지지, 커지면 세지지, 세지면 한입에 호록, 냠냠 맛있다······.”

/

수업을 마치고 사물함 문을 열자 그 속에서 반질반질 새까만 눈동자 두 개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 두 개가 똑바로 지은이를 보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

책상 밑으로 까만 얼굴이 휙 떨어지는가 싶더니, 새까만 눈동자가 지은이를 똑바로 보았다.
“우리 묘지은이 여기 있잖아.”

/

조마구가 깜짝 놀라 도리질을 했다.
“아냐, 아냐, 그냥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랬어. 네가 좋아서.”

◇ 감상
낡고 음침한 ‘미라아파트’

13동 지하에 미라가 산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암흑도로’와

전국 교통사고 1위

악명의 ‘까무룩터널’



까마귀 떼가 몰려다니는

오래된 유적지 ‘해골계곡’



매년 무더위가 찾아오면

빨갛게 변하는 ‘빨간목욕탕’ 강



그리고 대망의



1년 365일 가운데 300일은

안개가 구물구물 피어오르는

무시무시한 ‘안개초등학교’



*



으스스한 장소와

불길한 이름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사물함 속, 선반 밑

머리카락 사이···

묘지은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까만 눈



도대체 조마구 정체가 뭘까



나는 어른이니까!

으쓱하던 어깨가 움츠러들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오싹오싹한 이야기



그래서 작가님...

2권은 언제 나온다구요?



빨리 읽고 싶어서 현기증 나니까

숨도 쉬지 말고 글만 쓰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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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딴딴 시리즈 1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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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https://m.blog.naver.com/03x24/222463516914

◇ 프롤로그
우연을 연구하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결국 필연은 없다”고 말했다.

◇ 밑줄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21대 국회의원인 장혜영 의원도 이런 말을 했다. “비장애인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비장애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

삶의 모든 순간이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우연은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연의 신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주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 앞에서, 우리는 멈추어 선다. 그런 장면은 일상을 파고들어 세상을 달리 보게 한다. 보이지 않던 이면이 보이고, 당연한 일로 가득하던 세계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답을 찾는 동안 내 안의 일부는 무너지고 다시 쌓이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삶이 시작된다.

/

내가 수어를 공부하면서 발견한 단어도 희망이다.

/

수어[수화언어]​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화언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인정받았다. 한국수어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어휘와 문법을 가지고 있다.

수어를 배우다 보면 수어가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까지 사용해야 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근육이 얼얼할 정도로 깨닫게 된다.

/

농인은 표정을 보고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어로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

/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를 통해 사고가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은 그 언어에서 비롯된 공통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 가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가 <컨택트>다.

​영화의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는 외계 생명체인 헵타포드가 지구에 착륙한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들과 교류하면서 외계 언어를 습득해 나간다. 그 속에서 영화는 선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과 비선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헵타포드의 사고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루이스는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알게 되었음에도 같은 남자와 사랑하고, 그의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미래를 알게 된다는 건 결과를 알면서도 사람을, 삶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

‘말’이야말로 생각을 가장 투명하게 담아내는 그릇이니까.

/

나는 오직 내가 가진 단어 안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 나는 내 세상에 어떤 단어가 없는지 알지 못한다. 내게 ‘수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농사회가 존재하지도 몰랐던 것처럼, (···) 그래도 희망적인 건, 어떤 단어를 곁에 두고 살아야 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배려와 공감, 이해와 인정의 말을 우리 곁에 두면 된다.

/

이 세상에 가장 평화로운 단어가 있다면 그건 ‘누구나’가 아닐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누구나 살 수 있는 세상.

/

나의 채식 습관을 알릴 때마다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변할 거 같아?”라고 물어오는 사람도 여전히 있었다. 공격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순 없어도 가까운 사람 한 명 정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 되물으면 이런 말이 돌아왔다.

“사람 잘 안 변해.”

/

내 글이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도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으니까. 불편함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자신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세상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살아내고 싶어서 적어 내려간 문장이 우리를 변화시킬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 말고 이 세상에 어떤 희망이 있나요?”

◇ 감상
2016년이 되어서야

하나의 언어가 된

손으로 그린 표정의 말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수어는 내게 하나의 능력

반짝이는 선망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손짓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고 만다



아주 당연한 사실을

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



눈을 돌리기 전까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길



모두가 행복을 꿈꾸기 위해

‘누구나’를 이해하는 마음을

곁에 두기로 하자



그리고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변화를 알리며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는 당신에게

발맞추어 걷겠다 약속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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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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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https://m.blog.naver.com/03x24/222461219994

◇ 시작하는 문장
최애가 불타버렸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 밑줄
나는 아는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콘서트 같은 현장도 뛰지만, 굳이 말하자면 있는 듯 없는 듯한 팬으로 남고 싶다. 박수를 보내는 일부가 되고, 환성을 지르는 일부가 되고, 익명의 댓글을 남겨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

/

육체는 무겁다. 물을 차올리는 다리도, 달마다 막이 벗겨져 떨어지는 자궁도 무겁다.

/

최소한을 해내려고 힘을 짜내도 충분했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최소한에 도달하기 전에 의지와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다. (···) 육체의 무게에 붙은 이름은 나를 잠깐은 편하게 해줬지만 그에 더해 그 이름에 의지하고 매달리게도 했다. 최애를 응원할 때만 이 무게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네버랜드에 가자. 코끝이 찡했다. 나를 위한 말 같았다. 공명한 목에서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년의 발그스름한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목에서도 같은 말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말 대신 눈물이 차올랐다.

/

최애가 보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

바보 같은 질문이다.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존재 자체를 좋아하면 얼굴, 춤, 노래, 말투, 성격, 몸놀림, 최애와 연관된 모든 것이 좋아진다. ‘중이 미우면 승복도 밉다’라는 말의 반대다. 중을 좋아하면 중이 입은 승복의 터진 실밥까지 사랑스럽다. 그런 거다.

/

눈을 떴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비로 인해 회색빛으로 자욱했다. 어두운 구름은 해변 가까이 서 있는 집들을 감추었다. 최애의 세계에 닿으면 보이는 세상도 달라진다. 나는 창문에 비친 어둡고 따뜻해 보이는 나의 입 속 건조한 혀를 보며 소리 없이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러면 귀에서 흐르는 최애의 목소리가 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기분이 든다. 내 목소리에 최애의 목소리가 겹치고, 내 눈에 최애의 눈이 겹친다.

/

오늘도 지구는 둥글고 일은 끝이 없고 최애는 고귀해

/

세상에는 친구나 연인이나 지인이나 가족 같은 관계가 가득하고, 서로 작용하며 매일 미세하게 움직인다. 항상 상호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균형이 무너진 일방적인 관계를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희망도 없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친구를 뭐하러 계속 돌보냐느니 한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데 멋대로 불쌍하다고 하니까 지겹다. 나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이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니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

서로서로 배려하는 관계를 최애와 맺고 싶지 않다. (···)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

보건실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종소리도, 종소리를 시작으로 갑자기 떠들썩해지는 복도도, 밖에서 잎이 스치는 소리도 하얗고 차가운 침대에 누우면 멀게만 느껴진다.

/

만약 우리 집 소파였다면, 내 체온과 냄새가 스며든 담요 속이라면 달라진다.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더라도 해가 저물 때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마음 어딘가에 새까만 초조함이 달라붙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괴롭기도 하다.

/

나를 명확하게 아프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안고 있던 빨래였다. 내 방에 있는 엄청난 양의 파일과 사진, CD,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수많은 것들보다 셔츠 단 한 장이, 겨우 양말 한 켤레가 한 사람의 현재를 느끼게 한다. 은퇴한 최애의 현재를 앞으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

왜 나는 평범하게 생활하지 못할까.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생활이 왜 마음대로 안 될까. 처음부터 망가뜨리려고, 어지럽히려고 한 게 아니다. 살아 있었더니 노폐물처럼 고였다. 살아 있었더니 내 집이 무너졌다.

/

엉망진창이 됐다고 생각하기 싫으니까 내가 엉망진창을 만들고 싶었다.

/

면봉을 주웠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뼈를 줍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내가 바닥에 어지른 면봉을 주웠다.

(···)

기어 다니면서, 이게 내가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족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몸이 무겁다. 면봉을 주웠다.

◇ 감상
19세 등단과 동시에 각종 문학상 수상,

21세 두 번째 소설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천재 작가 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는



애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우리를 살아있게 할

그 감정의 세밀한 묘사로



지금 MZ세대를 이해할

단 한 권의 소설이 되었다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를 살게 하던 초록은

결국 네버랜드를 떠났다



웬디가 되려고 한 적은 없었으나

영영 팅커벨이고 싶진 않았지



날개를 떼어낸 자리에

척추를 고루 심는다



인생을 최애와 함께 태우면

여생만이 남을 텐데



결국 심지마저 사라졌구나



내일은 걸을 수 있을까

통증으로 짙어질 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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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로리 - 새장 밖으로 나간 사람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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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하세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절대 눈을 뜨면 안 됩니다. 빨간 글자로 내게 경고하며 속삭이던『버드박스』의 다음 이야기『맬로리』가 드디어 찾아왔다! 이제 단순한 생존으로 그치지 않고 진짜 삶을 향해 나아갈 그들에게 과연 파랑새는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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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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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원본
https://m.blog.naver.com/03x24/222450237045



◇ 시작하는 문장
법의인류학자에게는 ‘놀이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을 ‘뼈의 방The Bone Room’이라고 부른다.



◇ 밑줄
뼈는 신기한 존재다. 단단하면서도 탄성이 높고 회복력이 뛰어나며, 심지어 자란다. 나이를 먹으면서 뼈도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며 우리 일생의 모든 경험을 기록한다. 이런 뼈를 일컬어 ‘몸 안의 인생 기록’이라고 한다. 뼈에 새겨진 흔적들은 자신의 전기傳記나 마찬가지다.

/

   뼈는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철학이 죽음의 본질을 받아들였듯 뼈는 과학적ㆍ문화적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

법의인류학자는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서 뼈를 분석한다. 법의인류학forensic anthropology에서 ‘forensic’은 법적 증거 혹은 법의학을 의미한다. 원래 ‘forensic’은 라틴어 ‘forum’에서 유래한 말로 법원이라는 뜻이다. ‘Forensic’과 관련된 학과는 모두 법원에 증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사건의 옳고 그름이나 유죄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이 법의학의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법의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효과적으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할 단서와 흔적을 찾는 것이다.

/

   법의인류학의 역사는 길지 않다. 법의인류학과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로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송자宋慈가 1247년에 편찬한『세원집록洗寃集錄』을 들 수 있다. 중국 법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자는『세원집록』에 사건 조사 방법과 상세한 검시 순서, 사인 추론 방법 등을 실었다.

/

법의인류학자의 임무는 뼈를 분석하여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법의학자와 다르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사망 원인을 관찰해낸다.

/

   법의인류학자는 유골을 건네받은 뒤 ‘Big 4’라고 부르는 정보(성별, 나이, 혈통, 키)를 찾아낸다. 여기에 생전의 흔적인 외상, 만성 질병, 활동 흔적을 조사해 보태면 유골의 주인에 관한 기록 파일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기록이 있으면 가족을 찾을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법의인류학자를 일컬어 ‘이전-이후before-after’ 전문가라고도 한다. ‘이전’이란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한 일, 겪은 일이 뼈에 미친 영향을 뜻하며 ‘이후’는 죽은 뒤 뼈에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한다. 법의인류학자는 이 외에 인골을 찾아 수색하고 수습하는 일, 신원 식별에 도움이 될 만한 특징과 단서를 분석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

과학과 법의학의 도움으로 ‘170422145’는 본래 자신의 신원을 ‘새롭게’ 얻어냈다. ‘170422145’라는 번호 대신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자 유족에 대한 존경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뼈에 다시금 인간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법의인류학자는 죽은 이와 유족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유족의 의문에 답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법의인류학자가 실현할 수 있는 인권이고 의무이자 정의다.

/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고고학의 몇몇 중요한 원칙들은 법의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1. 누중의 법칙Superposition

범죄 현장에서는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모든 것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놓아야 한다. 법의고고학의 시각에서 보면, 발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가장 최근에 놓인 것이며 반대로 깊은 곳에 있을수록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 공반 관계Association

같은 지점에서 발견되거나 특징이 있는 물건과 함께 발견되는 물건은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법의고고학에서는 같은 무덤(예를 들어 집단 무덤 같은) 안의 모든 유골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3. 반복Recurrence

중복해서 나타나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무덤에서 찾아내는 물건이나 자주 사용하는 기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양인의 장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동양인들이 무덤 앞에 국화를 놓는 것을 보면 그 행위가 우연이 아니며 국화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법의학으로 살인범을 잡는 것보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는 죽은 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밝히는 것이며 미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배경, 정치, 종교는 달라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죽음은 한결같은 답을 준다. 바로 뼈 너머의 인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

뼈의 콜라겐, 치아의 법랑질, 머리카락과 손톱의 케라틴, 치아와 뼈의 광물 성분 분석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생활 습관을 이해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머리카락과 손톱의 동위 원소 분석을 통해서는 단기간(1~3개월)의 식습관과 여행 경로를 분석할 수 있고, 치아와 뼈의 동위 원소 분석을 통해서는 장기간 혹은 장시간의 식습관과 여행 경로를 알아낼 수 있다.

/

시체 부패 과정은 엄밀히 나누면 7단계로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일반화된 분류법이지만,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분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1. 사후 창백Pallor mortis/Postmortem paleness​

2. 시반Livor mortis​

3. 사후 체온 하강Algor mortis​

4. 사후 경직Rigor mortis​

5. 부패Putrefaction​

6. 분해Decomposition​

7. 백골화Skeletonization

/

   뼈는 다양한 문화의 종족들에게 느끼고 행동하며 기억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의 유골도 마찬가지다. 뼈는 매우 독특한 매개체로써 한 사람의 일생을 확장한다. 뼈는 늘 우리에게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종교와 철학에서도 뼈를 통해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왔다.

/

뼈는 우리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며, 전 세대에 걸친 사람과 뼈의 관계를 들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과 뼈의 관계는 반드시 다양한 각도와 문화, 역사를 통해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인류는 뼈를 이용해 악기, 보석, 소장품, 종교적 증거품을 만드는 등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뼈는 단순히 과학 연구 혹은 생물학의 일부에 그치지 않는다. 뼈는 문화와 역사, 사회의 한 부분이다.

/

뼈는 우리 몸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일깨우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알려준다. 두개골의 문화적 의미는 뼈가 우리에게 알려준 인생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뼈와 마주할 때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뼈에 담긴 문화와 역사, 생명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 감상
뼈에 새겨진 기록은

한 사람의 역사가 되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찾는다



앙상한 가지 위로

공손한 악수를 청할 때



침묵이 아니었던 아우성이

죽음이 가린 진실을 떠밀고



그제서야 거울은 한 사람을 담아

나를 똑바로 비춘다



*



그러니까 달도 없는 밤이었다

내 등을 두드린 넌 말이 없었다



이미 텅 비어버린 눈을

오래, 아주 오래 바라보자니



희미한 손가락 끝이

동그랗게 맺힌 빛으로

어둠을 가로지른다



뼈가 움직일 때마다

어디선가 구슬픈 울음이 들렸다



신중하게 들어올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기다린 자리로 되돌아가면



쓸쓸했구나

내가 왔어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숫자가 떠난 자리에

마지막 장면이 적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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